저는 대한민국 경찰의 일원으로서,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는 중요한 임무를 수행하고 있다는 자부심과 함께, 현재 경찰 조직이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한 깊은 고민을 가지고 이 글을 올립니다.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변경된 경찰 승진제도는 심사 비율을 70%로 상향하고 시험의 비중을 30%로 축소하였습니다. 이는 당초 해양경찰의 제도를 구색 맞추기식으로 도입한 것이라는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하며, 현장에서 법을 집행하는 경찰관으로서 심각한 우려를 표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일선 경찰관들의 목소리를 외면한 채 시행된 이 제도는 여러 가지 심각한 문제점을 야기하고 있으며, 이는 결국 국민에 대한 치안 서비스의 질 저하로 이어질 것이 자명합니다.
이에 저는 다음과 같은 이유로 현행 경찰 승진제도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심사-시험 비율을 5:5로 복귀하되 시험승진시 반영되는 근무평정 비율을 현행보다 강화하거나 또는 승진인원만 6:4로 완화하거나 일정 요건을 갖춘 경찰관에 대한 자격검정 또는 상대평가를 도입하는 혼합 방식으로의 개선을 간곡히 요청드립니다.
1. ‘보여주기식 실적’에만 매몰되는 현장, 그로 인한 국민의 피해
심사 승진 비율의 비정상적인 상향은 반드시 일선 경찰관들을 상급자의 눈에 들기 위한 ‘실적 쌓기’ 경쟁으로 내몰 것입니다. 특히, 국민 생활과 직결된 파출소, 여성청소년, 교통과 같은 민생 부서보다 소위 ‘힘 있는’ 상급자가 근무하는 기획, 경무, 정보, 경비 등 본청, 본서의 핵심 부서로의 인력 쏠림 현상이 심화되고 있습니다.
승진을 앞둔 경찰관들은 국민의 실질적인 안전 확보보다는 단기적인 성과로 보여줄 수 있는 단속 건수에만 집착하게 됩니다. 이는 적법하고 정당한 법 집행의 가치를 훼손하고,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할 소지가 다분합니다. 이러한 실적 위주의 단속 문제는 이미 언론에서도 수차례 지적된 바 있습니다.
“이재민 보호․치안 안정은 뒷전... 단속만 올인” (경북매일, 2024.4.20.)
"새정부에 경찰 인사 정상화를 기대하며 ‘공직기강 외치며 권력충성하는 모양새’ (경남도민일보. 25.6.10.)
이처럼 보여주기식 실적 경쟁은 결국 국민의 불신을 초래하고, 경찰의 존재 이유를 퇴색시키는 심각한 병폐가 아닐 수 없습니다.
또한 이미 과거 시험성적 60%, 근무평정 25%, 교육성적 15%로 승진시험 합격자를 선발하던 방식을 2015년부터 시험성적60%, 근무평정 40%로 변경하여 근무평정 비중이 대폭 확대되어 그 누구도 업무를 태만히 할 수 없는 실정에서 전체 승진임용예정 인원에서의 시험승진자의 비율까지 기존 50%였던 것을 이전 정부에서 30%로 축소한 것은 누가봐도 합리적으로 납득할 수 없는 결정입니다.
특히 이전 정부에서 경찰국 설치와 더불어 많은 이해할 수 없는 조치들이 있었던 것을 고려할 때 이러한 시험승진인원 비율의 축소는 ‘충성을 강요하는 조직’으로의 변질이 매우 우려됩니다.
2. ‘깜깜이 심사’와 ‘그들만의 리그’, 부패의 온상이 되는 승진제도
심사 승진은 결국 최고위 관리자와 그 직속 참모들의 손에 의해 좌우될 수밖에 없는 구조적 한계를 가지고 있습니다. 평가의 기준이 모호하고, 그 과정이 투명하게 공개되지 않는 ‘밀실 심사’는 각종 청탁과 뇌물 수수 등 부패의 고리가 되기 쉽습니다.
이는 단순히 개인의 일탈 문제를 넘어, 경찰 조직 전체의 신뢰를 무너뜨리는 심각한 범죄입니다. 과거부터 심사 승진을 둘러싼 비리 문제는 끊임없이 제기되어 왔으며, 이는 결코 과거의 유물이 아닙니다.
“승진 청탁 뇌물 수수 혐의 전직 치안감, 2심도 징역형” (TBC, 25.6.27.)
“전남경찰 또 승진 금품 논란... 승진 뇌물은 지금도 진행 중?” (국민일보, 25.5.29.)
이러한 ‘그들만의 리그’ 속에서 묵묵히 소임을 다하는 대다수의 경찰관들은 좌절감과 무력감에 빠지게 됩니다. 이는 조직의 사기를 저하시키고 건강한 조직 문화를 파괴하는 주된 요인이 됩니다.
3. 법률 지식 없는 경찰, 국민 위에 군림하는 경찰을 양산할 위험
경찰관은 국민에게 가장 많은 제재적, 강제적 영향을 미치는 공무원입니다. 따라서 경찰관에게 행정법, 형사소송법 등 법률적 지식은 선택이 아닌 필수입니다. 법률에 대한 깊이 있는 이해와 소양은 복잡다단한 현대 사회의 각종 문제에 대응하고, 국민의 권리를 보호하며 적법한 공권력을 행사하는 가장 기본적인 토대입니다.
그러나 심사 위주의 승진제도는 경찰관들을 법률 서적 대신 보고서 꾸미기와 공적 쌓기에만 몰두하게 만듭니다. 이는 국민의 인권을 수호해야 할 경찰관이 오히려 법을 모른 채 자의적이고 편의적인 법 집행을 하게 될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정무적으로 임명된 경찰청장 및 각 지방경찰청장의 지휘 아래, 법률적 소양이 부족한 경찰 조직은 언제든지 정치적이고 강압적인 법 집행 기구로 변질될 수 있습니다. 이는 과거 권위주의 정부 시절의 어두운 역사를 반복하는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4. 법과 양심을 따르는 ‘제2의 조성현 대령’을 키워내는 길
우리는 역사를 통해 불의한 명령에 저항한 양심의 목소리를 기억합니다. 과거 계엄 상황에서 국회의원을 체포하라는 위법한 지시에 대하여, 헌법과 법률에 근거하여 이를 거부한 조성현 대령의 용기 있는 행동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상급자의 부당한 지시가 아닌, 법률과 규정을 알고 자신의 의무와 권리를 명확히 인지하는 경찰관만이 국민과 헌법의 정신을 따를 수 있습니다. 이를 위해서는 일정 수준 이상의 법률 지식을 검증하는 시험 제도가 반드시 필요합니다. 시험은 단순히 지식을 측정하는 도구를 넘어, 경찰관으로서 갖추어야 할 최소한의 양심과 판단의 기준을 세우는 과정입니다.
물론, 과거 시험공부를 핑계로 업무를 태만히 하던 일부의 구태의연한 모습이 있었음을 부정하지는 않겠습니다. 하지만 현장의 분위기는 과거와 다릅니다. MZ세대를 중심으로 한 젊은 경찰관들은 업무 시간 내 부당한 자기계발에 대해 즉각적으로 문제를 제기하는 등 건강한 조직 문화가 자리 잡고 있습니다. 업무 태만을 이유로 시험 제도의 본질적 가치를 훼손하는 것은 구더기 무서워 장 못 담그는 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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