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화) 2010년9월 서울 G20정상회의 폐막식때의 일이다. 당시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한국에서 개최된 정상회의에 만족하고 한국에 감사를 표하기 위해 기자들에게 즉석 제안을 했다. “한국 기자들에게, 미국대통령에게 질문할 기회를 주겠습니다” 미국 대통령에게 질문을 할 수 있는, 기자에겐 최고의 기회를 주었으나 결국 아무도 질문하지 않았다. 오바마는 결국 그가 원치 않던 중국인 기자에게 질문권을 줄 수밖에 없었다. 사실상 한국 기자는 질문을 안 한 것이 아니라 못한 것이다.
위 예화는 무엇을 의미할까? 왜 우리나라 사람들은 국영수라고 할 정도로 영어를 집중적으로 공부하면서도 막상 영어 원어민들 혹은 필리핀 사람 앞에서도 영어 몇마디를 못하는 것일까? 더구나 영어에 막대한 사교육비까지 쓰는데도 왜 영어를 못할까? 반면 우리만큼 사교육비를 쓰지 않는 중국인들은 꽤 영어를 잘한다. 이건 또 왜 그럴까.
우리나라도 초중학교때는 아이들이 영어를 꽤 잘 말한다. 그러나 일단 고등학교에 가면, 수능이 독해력 위주이고 영어 듣기도 반복되는 유형의 암기과목과 비슷하여 학생들의 의사소통능력이 떨어지는 것이다.
EBS 수능연계 출제는 특히 영어에선 말이 안 된다. EBS 수능교재 중 다른과목들은 교과서 내용의 요약정리나 체계적 서술 등을 도모할 수 있지만 영어는 그게 안된다. 완전히 새로운 지문을 싣는데 이게 내용의 적정성도 정확성도 검증되지 않았다. 또 객관적으로 영어실력이 떨어지는 학생이라도 EBS 수능영어 교재만 달달 외우면 수능에서 더 높은 점수를 받을 수 있는 맹점이 있다.
대학 영어교육과에서 배우는 영어교육학 교재에 보면 외국어 교육의 목적이 가장 먼저 제시되는데 그것은 바로 학생들의 “의사소통능력 증진”이다. 이 목적에 맞는 시험 또는 교재는 좋은 시험 또는 교재이고 이 목적에 맞지 않는 시험은 나쁜 시험이다. 수능 영어시험은 나쁜 시험이고 EBS수능영어 교재는 나쁜 교재이다. 이것이 핵심 문제점이다.
중국인들은 영어를 잘한다. 특히 말하기를 잘한다.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 혹자는 중국어 어순이 영어와 같아서 (중국어 어순은 주어 동사 목적어이다)라고 한다. 그것도 한 가지 이유가 되겠지만 핵심적 이유는 아니다. 나는 얼마전 중국 대입시험(가오카오 - 高考) 영어 문제를 보았는데 왜 중국인들이 영어를 잘 말하는지 바로 알 수 있었다. 그들은 대입 영어시험에 ‘주관식 영작문’을 많이 출제한다. 주관식 영작문을 많이 출제하니 학생들은 평소 영어수업 시간에 주관식 영작문 연습을 많이 하게 되고, 그 영작문을 말로 하면 그것이 바로 영어회화이다. 이것이야말로 ‘의사소통능력 증진’이라는 외국어 교육 목적에 딱 맞는 시험 출제방식이다.
이러면 사교육도 크게 줄 것으로 생각한다.
우리나라도 대입영어 시험에 중국처럼 ‘주관식 영작문’ 문항을 많이 출제해야 한다. 혹자는 수능 이후 촉박한 전형일정 때문에 불가능하다고 할 것이다. 그러나 그런 이유로 우리는 반백년 이상 벙어리 영어교육을 해온 것이다. 이제는 바꿔야 한다. ‘의사소통능력 증진’에 걸맞는 시험 방식을 갖추어야 한다. 전형일정이 빠듯하다면 수능을 9월이나 10월에 치러도 된다. 채점 기간을 한 달 정도 충분히 갖고, 현직 및 퇴직교사 등 인력을 활용하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이게 정 어렵다면 대학입시 중 영어과목만이라도 한 두달 일찍 치러도 된다. 찾으면 방법은 얼마든지 있다. 올바른 교육, 의사소통능력을 키우는 시험다운 시험을 위해서 그 정도는 해야 한다.
이해를 돕기 위해 전형적인 중국 대학입시 영어 문항을 소개한다.
[예제1-작문] : 당신은 영국에서 영어 연수중이다. 영국인 Wilson의 집에 살고 있는데 오늘 집주인 Wilson은 집에 없다. 당신은 외출할 일이 있어서 그에게 메모를 남기려고 한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① 쇼핑하러 간다. ② 집 주인 대신 책을 반납한다.
③ Tracy가 전화해서 Wilson에게 전해달라는 말이 있었다. 내용은
- 커피숍에서 만날 약속 취소함 (Susan에게는 이미 취소를 알렸음)
- 가능한 한 빨리 전화 연락 바람 [답안작성요령] - 100단어 정도의 양으로 작성할 것.
[예제2-작문] : 당신이 중국 역사상의 영웅 중 한 명과 하루를 보낼 수 있는 기회를 얻는다면 어떻게 하루를 보내겠는가를 700 단어 이내로 쓰시오.)
위 문항들은 매우 잘 만들어진 영어 문항이다. 이런 문제를 잘 풀 수 있는 학생은 영어 말하기도 크게 어렵지 않을 것이다. 학교 영어시간에 연습하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중국에서는 이런 좋은 문항을 만들기 위해 대학입시 문항을 공개 공모한다. 현실적으로 대부분의 문항 제작 공모는 교사들에 의해 이루어진다. 이렇게 투명한 절차를 거쳐 제작되는 문항은 전문가 수십명이 기껏해야 한 달 합숙하며 만드는 문항보다 그 품질이 훨씬 더 뛰어나므로 출제오류 시비도 적다.
참고로 일본 대학입시 영어 문제에는 강세가 출제된다. 의사소통능력 증진을 위해서는 이 또한 중요하다. 영어에서 강세는 매우 중요하고 우리나라 사람들이 어려워하는 부분이기도 하다.
이번에 모처럼 국정을 새롭게 기획하는 기회를 갖게 되었으니 이번에는 반 백년간 미루어두었던 대학입시 영어 문항 출제 문제를 꼭 꼭 개혁하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돈도 들지 않는 이 개혁이 이루어만 진다면, 우리나라의 학부모와 학생들에게 장래 큰 힘을 주는 정책이 될 것이다. ‘실제로 통하는 영어’를 가르치는 교사들도 힘이 날 것이고, 이젠 학령 인구도 많이 줄어 교실 안에서 개별 지도를 하기도 예전보다 수월하다. 중고교 등에서 암기에 신물난 학생들도 한결 즐거운 수업이 될 것이며 한국 영어교육을 제대로 세우는 일이 될 것이다. ‘의사소통능력’을 키워 그야말로 세계로 뻗어가는 한국인이 될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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