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건복지부의 기만적인 장애인 편의시설 등 접근성 정책 관련하여 국민제안을 드립니다.
신문에 공개제안 형태로 기고하는 칼럼의 내용으로 작성된 것을 옮겨 수정, 보완한 것이라 반말체로 작성되었습니다.
휠체어, 유모차가 편의점에 가려면 출입구 턱 제거나 경사로 설치가 필요하지만 없는 때가 많다. 편의시설 바닥면적 기준이 너무 높기 때문이다. 1995년 1월 1일부터 시행된 구 편의시설 규칙을 보자. 소매점은 바닥면적 합계가 1,000㎡(302.5평) 이상이어야 한다. 1998년 4월 11일 시행된 장애인등편의법의 위임에 따라 정해진 대통령령은 그 기준을 300㎡(90.75평) 이상으로 일부 완화했다. 하지만 2019년 소매점 중 편의점의 98% 이상이 300㎡ 미만이었다. 즉 1~2% 편의점만이 300㎡ 이상이었다.
중요한 개선의 기회가 생겼다. 2008년 4월 11일 시행된 장애인차별금지법에 시설물 접근성 규정이 들어간 것이다. 놀랍게도 장애인차별금지법의 위임에 따라 정해진 대통령령에서는 단 하나의 대상시설도 추가하지 않았다. 소매점 대상 300㎡ 면적 기준도 유지했다.
시간적 적용범위는 오히려 줄었다. 장애인등편의법은 ‘1998년 4월 11일’ 이후 ‘신축, 증축, 개축, 대수선, 용도변경’된 건물에 편의시설 설치의무를 부과한다. 그런데 장애인차별금지법 시행령 제11조는 그중 ‘2009년 4월 11일’ 이후 ‘신축·증축·개축’된 시설물만 적용범위에 넣었다. 11년(1998~2009)의 기간 동안 지어진 건물을 빼버렸다. “대수선, 용도변경”도 빼버렸다. 편의시설과 별개로 보장해야 할 이동식 경사로나 호출벨 등 설비·서비스를 통한 편의제공의무도 시설물에 대해서는 완전히 면제해 버렸다.
개선할 기회가 다시 생겼다. 2014년 유엔 장애인권위원회는 한국에 건물의 크기, 용적률, 건축일자와 관계없는 접근성 기준 적용을 권고했다. 국회와 정부는 이를 무시했다.
2017년 12월 14일 국가인권위원회가 나섰다. 보건복지부장관 등에게 소규모 공중이용시설도 편의시설 설치의무를 지도록 시행령을 개정해 2019년 1월 1일부터 시행하도록 권고했다. 법령 개정은 수년간 이뤄지지 않았다.
결국 법원이 나섰다. 2022년 2월 10일 서울중앙지방법원(재판장 한성수)은 편의점 등 소매점에 적용되는 바닥면적 300㎡ 이상 기준은 위헌, 위법으로 무효라고 판결했다. GS25 편의점 측에게 편의시설 설치, 이동식 경사로‧호출벨 서비스 등의 편의제공을 명했다. 판결로 인한 충격일까. 2022년 4월 27일 보건복지부는 장애인등편의법 시행령을 개정하여 300㎡ 이상 기준을 50㎡ 이상으로 낮추었다. 2024년 10월 23일 대법원은 300㎡ 이상 기준을 장기간 개정하지 않은 것을 이유로 국가배상까지 인정했다. 위법한 행정입법부작위로 국가배상 판결이 난 것은 정부 수립 이후 최초이다.
해피엔딩일까. 아니다. 일단 바닥면적 50㎡ 미만의 편의점이 다수 있다. 더 큰 문제는 따로 있다. 위 기준은 2022년 5월 1일 이후 건축허가된 건축물에만 적용된다. 그전에 설치된 건물에 있는 편의점에는 300㎡ 이상 기준이 적용된다. 수십년의 건물내구연수를 고려하면 여전히 대부분의 편의점은 편의시설 설치 대상이 아니다. 2022년 5월 1일 이후 ‘증축·개축·재축·이전·대수선 또는 용도변경’되면 50㎡ 기준이 적용될 가능성도 ‘별개 건축물 증축, 전부 개축, 재축’으로 대폭 축소했다.
결국 2022년 5월 1일 전에 설치된 건물 대부분에는 300㎡ 이상 기준이 영원히 적용된다. 2022년 서울중앙지법 판결에 반하는 시행령 개정이다. 판결에서 2009년 4월 11일 이후 신축·증축·개축되면 면적과 상관없이 편의시설, 이동식 경사로, 호출벨 등을 제공하도록 명한 내용을 대폭 축소했다. 언론도, 정치인도 누구도 이런 문제를 지적하지 않는다.
이것은 정교한 기만이다. 매우 오래된 장난질이다. 행정부의 잘못이지만 그 원죄는 국회에 있다. 국회는 법률만 번드레하게 만든 후 구체적 사항을 행정입법에 위임하고 관심을 꺼버렸다. 보건복지부의 담당공무원은 시행령, 시행규칙의 정교한 조작을 통해 적용범위를 대폭 축소해 국회 입법의 취지를 무력화시킨다. 장애인 편의시설 담당 조직·인력의 부족과 기획재정부의 예산홀대라는 고충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행정부 전체로 보면 이는 국민에 대한 정교한 기만이다. 이러한 복잡한 장난질은 특히 장애인 접근성, 차별금지 입법에 다수 존재한다.
이재명 정부는 국정 100대 과제에 ‘장애인 접근성, 차별금지’ 문제를 넣어 보건복지부의 오래된 장난질을 멈춰주기 바란다. 이런 ‘기만적 행정입법’을 방치한다면 “이재명 후보가 대통령이 되어도 달라지는 게 없다”는 푸념만이 남을지도 모른다.
이런 시행령, 시행규칙을 통한 장난질은 특히 장애인 접근성, 차별금지 관련 행정입법에 많다. 몇가지 중요한 다른 예를 들면 이렇다. 교통 편의시설 중 ‘버스 휠체어 승강설비’를 시행규칙에서 ‘휠체어 탑승설비 또는 계단 낮추기’로 정의한다. 2층 이상 접근에 필수적인 ‘엘리베이터 즉, 승강기’ 항목은 ‘승강기 또는 계단’이라고 적는다. 편의시설 설치항목은 많은 것 같지만 ‘의무’와 ‘권장’ 항목을 만들어 중요한 것은 다 ‘권장’으로 뺀다.
국정 100대 과제에 장애인 접근성, 차별금지 항목을 넣어 진행해 주기 바란다.
특히 장애인 편의시설 문제는 장애인만의 문제가 아니다. 장애인, 노인, 임산부등의 편의증진보장에 관한 법률이라는 정식 명칭에서 보듯이, 노인과 임산부와 그 임산부 몸 안의 태아와 출산 후 영, 유아의 접근성을 포괄하는 문제이다. 고령화가 진행될 수록, 턱과 높은 계단으로 인한 낮은 접근성의 문제는, 턱과 계단을 넘기 힘들어하는 노인들과 휠체어를 일시적으로 혹은 장기간 이용하는 노인들의 문제가 될 것이다. 영유아를 유모차에 태우고 다녀보면 유모차 이용자에 적대적인 교통(버스, 지하철, 편의점, 식당 등), 건물 시설 환경을 금방 깨닫게 된다.
장애인, 노인, 임산부, 유모차 이용자의 접근성 문제는 저출산, 고령화 시대에 대비하여 근본적 변화가 필요한 영역 중 하나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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