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고1학생들은 새로운 입시제도의 첫 대상자입니다. 수능과 내신 5등급제, 선택과목의 안착, 학점제로 기초학력에 기반을 둔 수행평가 비중의 확대가 그 골자로 보입니다. 입시제도를 완화하고 학생들의 과목 선택과 공교육의 내실화를 위해 평상시 학교 생활에서 수행평가를 늘리겠다고 한 취지는 좋아보였습니다. 그런데 으레 첫 시도가 그렇듯 현장에서는 각종 부작용이 나오고 있습니다. 폐지하겠다던 등급제의 잔존으로 숫자만 달라졌을 뿐 높은 등급을 맞추어야 입시에 유리한 것은 여전하다는 점, 문이과가 통합되면서 기초과목이라고는 하지만 수능이 전과목으로 확대되니, 사교육계에서는 학부모와 학생의 불안을 활용한 마케팅이 더욱 횡행해졌습니다. 이렇게 학업에 대한 부담과 경쟁의식이 높아지니 막상 학교에서는 또래관계를 통해 배워야 할 협동, 배려, 존중, 공동체 의식을 배운다는 것은 불가능해보입니다. 성적과 평가에 맞추느라 꿈을 키우고 내 역량을 발견할 여유가 없습니다. 거기에 ‘내 공부만 잘하면 되지.’라는 생각으로 주위를 돌보고 함께 윈윈하려는 의지가 부족하고 인간이기에 가질 수 있는 정서지능이 퇴화됩니다.
무엇이 좋아졌을까요? 무엇이 대한민국의 미래를 살아갈 아이들을 위한 길일까요?
저는 학부모이면서 현장에서 활동하는 심리전문가입니다. 올해 고1인 저희 아이는 아직 학과를 정하지는 못했지만, 기대보다 낮은 한 학기 성적을 받고 “3년 후 대학입시에 실패하면 나는 무용한 인간이므로 자살하겠다.”고 합니다. 충격과 자책감에 잠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아이의 스스로 성적과 평가로 자신을 등급화하는 내면화가 일어나고 있음에 무력감과 자괴감이 들었습니다. 그러면서도 “나도 공부 잘하고 싶다”는 아이를 떠밀어 책상에 앉히고 역량에 맞지 않는 공부를 시키는 이 현실이 기괴하게 느껴집니다.
물론 제 아이 한명의 상황을 일반화하기는 어렵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줄어들지 않는 십대와 초기 성인의 자살율은 입시와 아이들의 고통을 증명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초기 수능세대인 저를 포함해서 수없이 많은 교육제도의 변화가 있어 왔지만 “등급제와 성적으로 아이들을 서열화 한다.”는 대학입시의 큰 틀은 변하지 않았습니다. 이는 대학서열화에서 기반하고 있으며 더 내려가면 뿌리깊은 자본주의, 사회계급화, 차별, 혐오, 선민의식 등에서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치열한 경쟁을 뚫고 어느 정도 사회에 정착한 성인들도 끊임없이 박탈감을 느끼고 높은 불안으로 치열하게 살다 지쳐 저에게 오는 모습에서 종종 이런 저의 사회의 단면을 느끼게 됩니다. 하루가 멀다하고 일어나는 인면수심의 강력범죄에서도 전세계 이례없는 대한민국의 외면적 성장의 이면에 정서의 미성숙과 선함과 도덕적 가치관의 부재도 작용했다고 생각합니다.
제안드리고 싶은 것은 현행 대학 수학능력시험에서 상대평가의 폐지입니다. 대학수학능력이라는 것 자체가 아이의 인생을 그 하루에 걸게 하는 것이 잘못되었다고 생각하지만 대체할 제도가 없는 상태에서 하루 아침에 폐지는 불가능하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대학에서의 수학능력이라는 것이 12년 아이의 학창시절을 대변하고 있다고 한다면 단 하루로 결정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라고 생각합니다. 거기다 개개인의 기초소양 정도의 정보만 취득하면 될 것을 상대평가로 서열화 하는데서 아이들의 고통과 자존감 하락이 시작됩니다. 궁극적으로 내신에서도 상대평가가 없어지고 기존 교육개혁의 취지대로 오로지 아이 한명 한명의 자질을 살피고 스스로의 노력 정도와 그 결과에 기반한 평가가 필요합니다. 물론 이러한 거대하고 전반적인 흐름은 학교구조의 변화, 교사들의 인식 전환, 평가기준의 체계화, 정책적 뒷받침과 관련 업계 이익 등 시장구조와 인식의 변화 등 전 국민적 동의가 필요하므로 하루아침에 이루어지기 어렵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귀하디귀한 우리 아이들의 미래와 대한민국의 지속가능성을 위해 가능한한 한걸음씩 나아가고 달라졌으면 좋겠습니다.
아이들이 살고싶은, 행복한 세상을 만들고 싶은 바램으로 살아가는 학부모이자 삶의 의미를 두는 대한민국 국민으로 정책제안 드렸습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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