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렴은 의지의 문제가 아니라 구조의 문제입니다
오늘날 공직사회의 청렴은 더 이상 개인의 도덕성에 기대어 유지될 수 없습니다. 지금까지 우리는 청렴을 도덕적 요청, 행동강령, 교육 등 개인의 결심에 맡기는 방식으로 다뤄왔습니다. 그러나 수많은 제도와 지표에도 불구하고, 조직 내부의 신뢰는 여전히 불안정하고, 제보는 주저되고, 정당한 절차보다 실적이 우선되는 관행은 바뀌지 않았습니다.
문제는 개인이 아니라, 청렴할 수 없도록 설계된 구조입니다. 따라서 지금 이 시점에서 우리는 ‘누가 청렴한가’가 아니라 ‘왜 청렴하지 않게 되는가’를 질문해야 합니다. 새 정부가 실질적인 청렴 강화를 원한다면, 그 출발은 공직 조직의 작동방식을 구조적으로 재설계하는 데 있어야 합니다.
이에 다음의 청렴시스템 3대 과제를 제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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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절차가 증거가 되는 조직: ‘공정한 과정’을 가시화하라
오늘날 공직사회는 '절차보다 실적'이 우선되는 경향 속에서, 성과 압박과 조기집행, 실무 간소화라는 이름으로 절차를 생략하는 관행이 누적되어 왔습니다. 하지만 청렴은 결과가 아니라 ‘과정의 정당성’에서 비롯됩니다. 정당한 과정을 생략하고 신속한 결과만을 요구하는 구조 속에서, 공직자는 불가피하게 편법과 타협을 선택하게 됩니다.
이를 해결하려면, 정당한 절차를 ‘거쳤는지’ 여부를 가시화하는 시스템이 필요합니다. 민원, 계약, 인사, 심사 등의 주요 업무에 있어 일정한 절차를 밟았음을 확인하는 사전체크 시스템과 정당성 설명 의무화가 반드시 필요합니다. ‘왜 이 결정을 했는가’에 대해 한 줄의 정당성 근거라도 남긴다면, 청렴은 실천 가능한 일이 됩니다.
청렴이란 결국, 결정 과정에 대한 책임과 투명성을 일상적으로 구조화하는 일입니다. 이 기본이 작동하는 조직만이 진정으로 청렴한 조직이라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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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숨기지 않아도 되는 구조: 이해충돌과 외부활동의 투명화
청렴을 무너뜨리는 가장 큰 요인은 ‘은폐되는 이해충돌’입니다. 직무와 사적 이익이 충돌하는 상황에서, 조직이 그것을 감지하지 못하거나 방치할 때 부패는 발생합니다. 문제는 이해충돌이 불법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더 큰 문제는, 드러낼 경우 불이익이 예상되기 때문에 오히려 숨기게 만든다는 점입니다.
따라서 ‘이해충돌이 없도록 조심하라’는 요구 대신, 드러내는 것이 보호받는 시스템이 작동해야 합니다. 공직자는 자신의 이해관계를 사전에 고지하고, 조직은 그 내용을 사후 검토하여 회피 또는 조정을 안내하는 구조가 필요합니다. 또한 겸직의 경우, 허가제가 아니라 등록과 공개를 원칙으로 한 신고제로 전환해야 합니다. 이는 외부활동을 막는 것이 아니라, 공정한 통제를 가능하게 만드는 전제조건입니다.
진짜 청렴은 금지의 엄격함이 아니라, 투명성의 일상화로부터 비롯됩니다. 조직이 이해충돌을 스스로 드러낼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하지 않는다면, 청렴은 오히려 은폐를 부추기는 제도로 전락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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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말할 수 있는 조직: 내부제보와 피드백 시스템을 작동시켜라
청렴은 문제를 예방하는 감시에서 완성되며, 그 감시는 오로지 조직 내부로부터의 자정 능력을 통해 이루어집니다. 하지만 현재 많은 조직은 여전히 침묵을 유도합니다. 문제를 말해도 반영되지 않고, 문제를 드러낸 이들은 때로 고립되며, 문제를 만든 구조는 남고 개인만 교체되는 일이 반복됩니다.
이런 환경에서는 누구도 감히 청렴을 지킬 수 없습니다. 공직사회는 ‘신고하라’고 하지만, 신고해도 바뀌지 않고 오히려 불이익을 받는 구조를 방치합니다. 이는 조직이 자정 능력을 포기하는 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이에 따라, 익명제보가 공식 루트를 통해 접수되고, 신고 이후 처리 결과가 요약되어 공유되는 시스템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또한 제보자 보호 조항을 형식적으로 명시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인사·평가상 불이익을 금지하고 실제로 점검하는 사후 모니터링 체계를 마련해야 합니다.
말할 수 없는 조직은 결코 청렴할 수 없습니다. 말했을 때 바뀌고, 말했을 때 보호받는 경험이 축적될 때, 비로소 조직은 청렴을 지킬 수 있는 힘을 갖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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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론: 청렴은 설계의 문제다
새 정부가 진정으로 청렴한 공직사회를 원한다면, 더 많은 규제나 교육보다 먼저, 청렴할 수 있도록 유도하는 구조적 설계에 집중해야 합니다. 청렴은 ‘좋은 사람이 되자’는 다짐으로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청렴이란, 결정을 할 때 절차를 점검하게 하고, 이해관계를 드러내도 불이익이 없으며, 문제를 말하면 반영되는 구조 속에서만 지속될 수 있는 가치입니다.
청렴은 의지의 문제가 아닙니다. 그것은 시스템의 문제이며, 곧 국가의 운영방식에 대한 선택입니다.
이제껏 해왔던 선택들을 다시 큰 틀에서 검토해야할 시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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