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 민주주의를 수입한 나라가 아니다. 동학농민혁명부터 3·1운동, 4·19혁명, 5·18광주민주화운동, 6·10항쟁, 촛불시민혁명에 이르기까지, 시민이 주도하여 정권을 바꾸고 제도를 전환한 세계적으로 유례없는 민주주의 경험을 가진 나라다. 이 모든 과정은 단지 정치사의 일부가 아니라, 대한민국이 세계사에 남길 유산이자 철학이다. 그러나 우리는 이 위대한 자산을 아직 충분히 기념하고 제도화하지 못하고 있다. 단순한 기념일 지정이나 추모사업 수준을 넘어, 민주주의 자체를 하나의 ‘문화유산’으로 정의하고 세계와 공유할 제도적 장치가 절실하다.
이를 위해 민주문화유산 세계화 전략의 3대 핵심 과제를 제안한다.
첫째, 민주문화유산 지정제도와 특별법 제정이다.
민주주의는 제도 이전에 정신이고, 경험이며, 기억이다. 이 기억을 국가가 책임지고 보존하기 위해서는 ‘민주문화유산’이라는 새로운 개념을 법제화해야 한다. 그 출발점은 ‘민주문화유산 제1호’로 동학농민혁명을 지정하는 것이다. 동학농민혁명은 1894, 조선 말기 백성들이 탐관오리를 몰아내고, 전주화약을 통해 민정 개혁을 요구하며, 집강소라는 자치제도를 실험한 세계사적으로도 드문 ‘민중의 정치 실천’ 사례다. 이는 한국 민주주의의 기원으로 보기에 충분하며, 세계 어느 나라에도 없는 ‘민주주의적 전통의 뿌리’로서 상징성을 갖는다. 예를 들어 황토현 전적지, 전주화약 기록, 집강소 설치지 등을 중심으로 한 ‘동학민주유산벨트’를 조성하고, 민주문화유산 특별법에 따라 공식적인 국가유산으로 지정·보존해야 한다. 이를 시작으로 4·19혁명, 5·18항쟁, 6·10민주항쟁 등으로 이어지는 민주주의 공간을 체계화하고, 교육·기념·전시가 이루어지는 제도 기반을 마련할 수 있다.
둘째, ‘민주주의 교육 성지, 대한민국’ 프로젝트를 추진하자는 것이다.
프랑스에 ‘인권의 계단(Les escaliers des droits de l’homme)'이 있다면, 대한민국에는 ‘민주주의 순례길(Democracy Road)’이 있어야 한다. 한국의 민주주의 유산지를 연결하는 이 길은 세계 시민들에게 한국의 민주주의를 체험하고 사유하는 교육·여행의 길이 될 수 있다.
그리고 그간 한국의 민주주의를 위해 희생한 자들을 위한 꺼지지 않는 불꽃이나 민주주의 등불과 같은 상징물도 함께 조성함으로써, 기억을 문화로 전환하는 시도가 필요하다.
서울, 광주, 대구, 전주, 부산 등 민주주의 유산도시를 중심으로 한 국제민주교육포럼, 청년민주캠프, 글로벌 시민아카데미 등을 통해 ‘민주주의를 배우러 오는 나라, '한국’을 만들 수 있을 것이다.
셋째, 세계민주문화유산 유네스코 등재 및 국제기구 유치가 될 수 있겠다.
우리가 제도화한 민주문화유산 시스템은 보편성과 독창성이라는 두 가치를 함께 가진 새로운 세계유산 모델이다. 이제는 유네스코에 ‘세계민주문화유산’이라는 새로운 유산 카테고리의 도입을 제안하고, 이를 관장할 ‘세계민주문화유산위원회’ 사무국을 한국에 유치해야 한다. 한국이 민주주의 교류와 연대의 허브로 자리매김하기 위한 국제적 외교전략이기도 하다.
민주주의는 결코 완성된 제도가 아니다. 끊임없는 교육과 훈련, 그리고 기억을 통해 지속되는 삶의 원칙이다.
미국의 토머스 제퍼슨은 “민주주의의 나무는 피를 먹고 자란다”고 말했다. 한국 민주주의는 단기간에 이루어진 측면이 있다. 그만큼 많은 이들의 희생이 있었고, 그것은 곧 우리가 기억하고 지켜야 할 가장 중요한 문화유산이다. 이제 그 유산을 국가가 책임지고, 세계와 함께 나눌 준비를 해야 할 때다. 새로운 대통령의 출발에 맞추어, 대한민국은 민주주의를 가장 잘 설명할 수 있는 나라, 민주주의를 세계와 나누는 나라가 되어야 한다. 그것이 한국이 감당해야 할 21세기형 강대국의 역할이자, K-민주주의의 세계적 위상을 세우는 첫걸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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