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안의 핵심>
이 제안은 대한민국이 글로벌 AI 패권 경쟁에서 기술 추격자(Fast Follower)에 머무를 것이 아니라, 우리가 가진 독보적 강점을 기반으로 새로운 규칙을 창조하는 ‘AI 구현국가(AI Implementation Nation)’로 나아가야 함을 제언합니다.
이는 단순히 파운데이션 모델 개발 경쟁에 막대한 자원을 소모하는 ‘풀스택(Full-Stack) AI’의 환상에서 벗어나, 세계 최고 수준의 산업·사회 시스템 구현 역량을 바탕으로 AI를 가장 정교하고 효율적으로 현장에 적용·운영하는 국가로 자리매김하는 전략입니다.
이를 위해,
▲대통령 직속 ‘AI 국가전략위원회’ 컨트롤타워 확립,
▲5대 국가 AI 플래그십 구현 프로젝트 추진,
▲SI(System Integration) 산업의 전략적 재편,
▲산업별 ‘도메인 AI 전환’ 법제화,
▲’구현 인재’ 양성 및 데이터 주권 확보
를 핵심 과제로 제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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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서론: 전략적 분기점에 선 대한민국 AI
대한민국은 세계 최고 수준의 ICT 인프라와 데이터 활용 능력을 바탕으로 AI 경쟁력 지표에서 글로벌 상위권을 유지하고 있습니다(토터스 인텔리전스, 2024). 정부 역시 ‘AI 국가전략’(2019)을 필두로 인재 양성과 인프라 구축에 막대한 예산을 투입하며 정책적 의지를 보여왔습니다.
그러나 화려한 지표 이면에는 핵심 기술의 해외 의존성 심화, 민간 투자의 수도권·플랫폼 편중, 고급 인재의 만성적 부족이라는 구조적 한계가 존재합니다. 특히, OpenAI, 구글, 앤트로픽 등이 주도하는 거대언어모델(LLM) 경쟁은 천문학적 자본과 인재, 데이터를 요구하며, 국가 주도의 추격이 사실상 불가능에 가까운 ‘그들만의 리그’가 되고 있습니다.
지금 대한민국은 중대한 전략적 분기점에 서 있습니다. 막대한 자원을 투입하여 선두 그룹을 추격하는 소모적 경쟁을 계속할 것인가, 아니면 우리만이 가진 강점을 극대화하여 새로운 경쟁 우위를 창출할 것인가? 본 보고서는 후자의 길, 즉 ‘AI 구현국가’로의 패러다임 전환이 대한민국이 선택해야 할 유일하고도 최적의 경로임을 논증하고 구체적인 정책 로드맵을 제시하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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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I. 대한민국 IT 산업의 강점과 구조적 한계 진단
1. 세계가 주목하지 않는 진짜 강점, ‘구현력(Implementation Power)’
대한민국 IT 산업의 진정한 저력은 소프트웨어 ‘개발(Development)’ 역량을 넘어, 복잡다단한 현실 세계의 비즈니스와 사회 시스템을 분석하고 이를 완결된 IT 시스템으로 ‘구현(Implementation)’해내는 능력에 있습니다. 이는 압축 성장의 과정에서 축적된 독보적인 자산입니다.
- 금융 시스템:
세계에서 가장 복잡하고 빠른 은행 코어뱅킹 시스템을 각 금융사가 자체적으로 구축·운영하며 얻은 노하우는 단순한 코딩 능력이 아닌, 금융 도메인 지식과 IT 아키텍처가 결합된 결과물입니다.
- 공공 시스템:
주민등록, 부동산 등기, 홈택스(HTS)에서 정부24에 이르는 전국 단위의 전자정부 시스템은, 찢어져 있던 행정 서비스를 하나의 디지털 플랫폼으로 통합한 대규모 시스템 엔지니어링의 성공 사례입니다.
- 산업 시스템:
재벌 대기업들은 그룹 내에 삼성SDS, LG CNS, SK C&C와 같은 SI 자회사를 두고, 제조, 물류, 유통, 인사(HR) 등 각 산업 도메인의 특화된 프로세스를 IT 시스템으로 내재화했습니다. 이는 경영권 승계의 도구로 비판받기도 했으나, 결과적으로는 각 산업의 ‘업무 지도’에 해당하는 방대한 IT 구현 자산을 축적하게 된 계기가 되었습니다.
이 ‘구현력’은 알고리즘 설계 능력과는 다른 차원의 경쟁력입니다. 이는 도메인 전문성, 프로세스 설계 능력, 대규모 시스템 통합 및 운영 능력이 결합된, 대한민국만이 가진 핵심 역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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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성장을 제약하는 구조적 문제점
이러한 강점에도 불구하고, 대한민국의 AI 산업 정책은 다음과 같은 구조적 문제로 인해 방향성을 잃고 있습니다.
- 문제점 1: ‘IT 산업’의 혼종적 분류와 정책의 초점 부재
IT가 모든 산업의 기반이 되면서, 반도체(제조업), 통신(인프라), 플랫폼(서비스업), 배달앱(유통업)까지 모두 ‘IT 산업’이라는 모호한 범주 안에 묶여 있습니다. KDI, 삼성경제연구소 등 다수의 보고서가 지적하듯, 이는 산업의 본질을 흐리고 정책 자원의 효율적 배분을 가로막습니다. 반도체 육성 정책과 플랫폼 지원 정책이 동일한 부처의 동일한 논리로 집행되는 것은 전략적이지 않습니다.
- 문제점 2: 실리콘밸리 모델 추종과 ‘구현 자산’의 저평가
정부의 AI 정책은 ‘혁신’의 상징인 스타트업 육성에 과도하게 집중되어 왔습니다. 이는 실리콘밸리 모델을 맹목적으로 추종한 결과이며, 정작 대한민국이 가진 SI 기업들의 방대한 ‘구현 자산’을 낡고 비효율적인 것으로 치부하는 오류를 낳았습니다. 이들은 혁신에서 소외된 하청 관리 기업이 아니라, AI 시대에 각 산업의 디지털 전환을 이끌 ‘잠자는 거인’입니다.
- 문제점 3: 풀스택(Full-Stack)의 환상과 전략적 자원 낭비
“우리도 자체 LLM을 가져야 한다”는 강박은 국가적 역량을 비효율적으로 소모시킬 위험이 큽니다. 미·중 빅테크 기업과의 직접 경쟁은 ‘계란으로 바위 치기’에 가깝습니다. ETRI 등 국책 연구기관의 노력은 중요하지만, 국가 전체의 전략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이는 선택과 집중의 원칙에 위배되며, 우리가 더 잘할 수 있는 영역에 투입될 자원을 낭비하는 결과를 초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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