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 위기를 극복은 풀뿌리 출판생태계 회복으로부터
- 독자 확장이 아니라 작가 생존이 먼저입니다.
- 출판생태계를 살리는 1천억 원 출판지원사업 제안
출판을 위해 작가를 만나면 항상 작가의 고유성과 독자의 보편성에 대해 의견을 나누곤 합니다. 출판에서 작가만큼이나 독자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말을 하고 싶기 때문입니다. 독자의 취향에 작가의 의도를 맞추라는 말이 아니라 작가의 고유성이 독자의 보편성 위에 꽃 피워야 한다는 뜻입니다.
너른 의미에서 독자는 어떤 특정 집단을 의미하는 말이 아니라 책의 필요성, 독서의 필요성을 어떤 순간에 느끼는 일반 대중을 아우르는 말입니다. 그러나 책 말고도 그 필요성(재미, 정보, 감동 등등)을 해소할 다양한 수단이 손안에서 해결되는 시대가 되어 ‘독자대중’은 점점 사라지고 있고, 그나마 수요는 실용서와 베스트셀러 중심으로 작동하고 있습니다. 그런 영향인지 책 그 자체의 매력과 독서 그 자체의 행위에 행복을 느끼는 일군의 취향소비자, 고관여소비자인 좁은 의미의 독자, ‘진성독자’의 충성도가 도드라져 보이는 현실입니다.
지역 동네책방, 독립서점과 온라인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출판생태계의 한 축을 담당하는 진성독자의 응원이 작은출판사들에겐 큰 힘이 되고 있습니다. 사실 독자대중과 진성독자를 나누는 건 출판계 현황에 대한 논의를 쉽게 하기 위해 인위적으로 설정한 것일지도 모릅니다. 진성독자가 독자대중일 수도 그 반대일 수도 있을 것입니다.
출판정책을 담당하는 분들은 독자군을 확대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독자대중을 진성독자로 만들고 싶어 하고, 나아가 독자대중의 저변을 확장하고 싶어 합니다. 여기에 여러 프로모션과 캠페인을 진행합니다. 그러나 실제로 독자는 여전히 움직이지 않습니다. 책 대신 유튜브와 AI 거대언어모델이 더 유용한 대체제가 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사회적 이슈와 맞물려 간간이 폭발하는 베스트셀러의 독자대중이 꾸준히 책을 소비하는 진성독자로 진화하는 일이 점점 더 어려운 일이 되고 있습니다. 이 때문인지 출판생태계는 전례 없는 불황을 맞고 있습니다.
이른바 K-컬처라 불리는 우리의 문화콘텐츠가 세계적으로 호응을 불러일으키고 있습니다. 대중음악, 영화에 이어 문학도 K-컬처의 저력을 자랑하고 있습니다. 격변의 시대를 관통해 온 우리 문화의 높은 밀도 속에 자라난 콘텐츠 생산자의 뛰어난 재능이 비로소 꽃피우고 있습니다.
그러나 모든 문화콘텐츠의 원천이라고 할 수 있는 저작콘텐츠 생산을 담당하는 출판계가 위기를 맞고 있는 상황이라 K-컬처의 오리지날 소스의 다양성과 역량이 점점 쇠퇴하고 있다는 게 출판계의 진단입니다. 그리고 건강한 출판생태계의 복원이 K-컬처의 융성을 유지할 수 있는 원천이 될 것으로 판단하고 있습니다.
출판생태계의 복원은 풀뿌리 출판생태계 활성화에서부터 시작합니다.
풀뿌리 출판생태계 활성화의 단초는 이미 마련되어 있습니다. 바로 독립서점과 일인출판사, 그리고 신진저자가 증가하는 추세라는 점입니다. 단지 활성화를 본격화할 수 있는 촉매가 필요할 뿐입니다. 촉매제는 출판생태계 활성화를 위한 대규모 지원사업입니다.
독립서점과 일인출판사의 증가는 양면성이 있습니다. 대형출판사를 중심으로 편재되어 있는 국내 출판시장의 한계점이 여기에 반영되어 있습니다. 대형출판사는 기본적으로 출간기획을 판매량의 관점에서 바라봅니다. 출판시장 자체가 위축되고 있는 상황에서 더욱 이점이 강조됩니다. 이슈를 선점할 만한 그리고 이미 고정독자층을 확보하고 있는 A급 저자군을 관리하면서 출간기획과 마케팅을 도모합니다. 특별한 경우가 아니라면 굳이 신진저자군을 내세우지 않습니다. 소형출판사에서 신진저자를 길어 올려 궤도에 올리면 A급이라는 이름표를 제시하면서 모시고 오면 되기 때문입니다. 신진저자 역시 대형출판사에서 출간하는 걸 선호하고 있습니다. 한편 대형출판사는 사내 구조조정을 통해 고임금의 경력자를 줄이는 대신 중간 관리자와 신입 직원을 늘리고 있습니다. 독립서점과 일인출판사의 인력들은 많은 부분 대형출판사의 퇴직자 풀에서 비롯합니다. 말하자면, 기본 실력을 넘어 충분한 실무 경험을 장착한 전문 인력이 풀뿌리 출판문화의 저변에서 활동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환경이 독립서점과 일인출판사의 저력을 만만히 볼 수 없게 하는 이유입니다. 이들의 저력은 바로 능력 있는 신진저자 발굴로 이어집니다. 신진저자의 가능성을 판단하고 프로모션하여 콘텐츠문화상품으로 시장에 론칭할 능력이 있는 집단입니다.
신진저자에는 두 부류가 존재합니다. 하나는 요즘 우후죽순처럼 번지는 출판아카데미를 통해 저자로 데뷔하고자 하는 저자층입니다. 간혹 뛰어난 원고가 있긴 하지만 대부분 원고가 자신의 ‘인생사’를 자서전적으로 서술한 원고가 대부분이라 일반적으로 자비출판 시장에서 소비되는 측면이 강합니다. 또 하나는 이미 진성독자라고 말한 부류로, 책과 독서, 문화와 문학에 심취한 일군의 예비 창작자군입니다. 진성독자 부류는 직간접적으로 저작, 번역, 디자인, 출판 등 출판계와 연계되어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진성독자에서 신진저자로 언제든 신분전환이 가능한 부류입니다. 이 경우 놀라운 저작 성과를 보여주는 사례가 많습니다. 최근 많은 출판사에서 투고량이 증가하여 편집자들 사이에서는 투고를 확인하고 답변하는 데 이전보다 노동량을 더 많이 투여하고 있다고 볼멘소리가 나오기도 합니다. 그러나 아쉽게도 점점 더 이 투고들이 자비출판이 아닌 한에서 제대로 출간되기 어려워지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설사 출간된다 하더라도 저자들은 제대로 인세를 받기 어렵습니다. 초판부수가 점점 줄어드는 것에 따라 선인세도 줄거니와 많은 경우 선인세 대신 선인세 없이 기간판매 부수 방식으로 인세를 지급하기 때문입니다. 시장에서 반응이 없으니 인세도 쥐꼬리만 하고, 출간 자체에 의의를 두고 출간하는 경우가 많아졌습니다.
문제는 여기에 있습니다. 저작을 위해 바친 몇 달간의 노력이 보상도 없이 사라져 버리는 것입니다. 간혹 운이 좋아 시장에 안착하거나 보상이 없더라도 꾸준히 노력한 결과 일정 정도 성과를 이룬 경우도 있겠지만, 대부분 보상이 없기에 직업으로서 저작활동을 멈추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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