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관 후보자로 출근하면서 인터뷰 중에 "갈등"에 대해 언급하였습니다. 하지만, 갈등에 대한 속설에 기인한 단편적인 내용이었습니다. 공직 후보자의 말은 신중해야 합니다. 그래서 갈등의 본 의미를 전해 드립니다.
등나무와 칡, 그리고 '갈등'이라는 말
숲을 걷다 보면 굵고 단단한 줄기가 하늘을 향해 뻗어나가는 등나무와, 땅을 기어가듯 엉키며 자라는 칡을 마주할 때가 있습니다. 이 두 식물은 종종 서로 뒤얽힌 채 복잡한 모습을 보이곤 합니다. 옛 사람들은 이러한 모습을 보며 ‘갈등(葛藤)’이라는 단어를 만들어냈습니다. 갈(葛)은 칡을, 등(藤)은 등나무를 뜻합니다. 갈등이란, 칡과 등나무가 서로 얽히고 설켜 쉽게 풀리지 않는 상태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그렇다면 실제로 등나무와 칡은 얽히는 식물일까요? 또, 둘이 얽히면 반드시 하나가 이기고 다른 하나는 사라지는, 아니면 둘 다 공멸하는 관계일까요?
성장의 방식과 방향
식물학적으로 보면 등나무(Wisteria floribunda)와 칡(Pueraria lobata)은 둘 다 덩굴성 식물이지만, 성장 방식과 방향, 그리고 생존 전략에는 분명한 차이가 있습니다.
등나무는 다른 식물이나 구조물을 감아 올라가며 자라는데, 일반적으로 시계 방향(오른쪽에서 왼쪽으로) 감아오릅니다. 시간이 지나면 줄기가 굵어지고 단단해져, 마치 작은 나무처럼 목질화됩니다. 그리하여 한 번 자리를 잡으면 강한 바람에도 쉽게 쓰러지지 않고 오래 살아남습니다.
반면 칡은 부드러운 줄기를 가지고 있으며, 반시계 방향(왼쪽에서 오른쪽으로) 감아 올라가는 특징이 있습니다. 동시에 땅을 기어가듯 넓게 뻗으며, 빠른 속도로 덮어버리는 성질을 지닙니다. 특히 여름철에는 하루에도 수십 센티미터 자랄 만큼 왕성한 생장력을 보여줍니다.
이처럼 감아 오르는 방향이 서로 반대이기 때문에, 실제로 둘이 같은 지지물을 타고 자라면 서로 꼬여 뒤얽히게 됩니다. 그리하여 서로의 줄기를 조이는 현상이 발생하기도 하며, 오래 지속되면 한쪽이 상처를 입거나 줄기가 끊기기도 합니다. 이런 특성 때문에 ‘만나면 죽는다’는 속설이 생겨난 것입니다. 그러나 이는 과장된 표현이며, 실제로 둘 중 하나가 반드시 죽는 관계는 아닙니다.
얽히는 관계, 갈등의 진짜 의미
등나무와 칡은 성장하는 공간이 충분하면 서로 간섭하지 않고 자랄 수 있습니다. 등나무는 하늘을 향해 줄기를 감으며 올라가고, 칡은 땅을 따라 옆으로 뻗어 나아갑니다. 그러나 숲 속이나 언덕처럼 햇빛과 지지대가 제한된 공간에서는 두 식물이 서로 부딪히게 됩니다. 칡은 등나무를 덮어 광합성을 방해할 수 있고, 등나무는 칡을 감으며 줄기를 단단히 조일 수 있습니다.
이런 얽힘은 곧 성장을 저해하는 갈등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이 갈등이 곧 파괴나 죽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는 점입니다. 등나무는 단단한 줄기로, 칡은 땅속 깊은 뿌리로 자신을 지탱하며 살아갑니다. 겉으로 보기에 싸우는 것 같아도, 실제로는 서로 다르게 버티고, 나름의 방법으로 생존을 도모하는 관계입니다.
자연이 말해주는 갈등의 지혜
우리는 ‘갈등’이라는 단어를 대개 부정적인 의미로 사용합니다. 하지만 등나무와 칡의 관계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갈등이 반드시 승패나 결별로 이어지지 않아도 됨을 알 수 있습니다. 때로는 얽히면서 배우고, 부딪히면서 단단해집니다. 둘 사이에 적당한 거리와 시간, 그리고 공간이 허락된다면, 얽힘 속에서도 함께 살아갈 수 있습니다.
사람의 관계도 마찬가지입니다. 서로 다른 방향을 가진 존재들이 만났을 때, 갈등은 자연스럽게 생깁니다. 하지만 그것이 반드시 관계의 실패를 뜻하지는 않습니다. 서로의 차이를 이해하고, 각자의 방식대로 성장할 수 있는 여유를 주는 것이 중요합니다. 등나무가 위로 오르고, 칡이 옆으로 퍼지는 것처럼, 사람도 저마다 다른 방식으로 살아가는 법이 있으니까요.
얽힘 속에서 피어나는 공존
다음에 숲길을 걷다 등나무와 칡이 얽혀 있는 모습을 보게 된다면, 잠시 멈춰서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들은 싸우는 것이 아닙니다. 공간을 두고, 방향을 달리하여, 각자의 생존을 모색하는 중입니다. 얽힘 속에서도 살아남는 자연의 지혜는 우리에게 조용히 말해줍니다. 갈등은 피할 수 없는 것이지만,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어떻게 견뎌내느냐에 따라, 우리 또한 더 깊고 단단해질 수 있습니다.
그러니 갈등 앞에서 두려워 마시고, 등나무와 칡처럼 서로 다른 방향 속에서 조화를 이루는 길을 함께 찾아보는 건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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