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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대통령이 듣겠습니다.

경제정책의 새로운 파라다임을 위한 경제학의 저변확대(1부) --신고전경제(Neo-Classical Economy)의 한계--

해방과 더불어 미군정이 들어서고, 이어서 발발한 6.25 사변을 거치면서 미국의 선진문물은 선망의 대상이 되었고, 이는 곧 ‘미국을 배우자’는 뜨거운 열기로 이어졌다. 이에 경제학도 미국의 선진학문으로써 예외가 아니었다. 이런 시대적 요구에 편승한 유학생들이 미국 현지에서 익히고 도입한 것이 ‘신고전경제’이며, 이는 이후 우리 사회의 ‘주류 경제학’으로 자리잡았다. 역사적으로 보면, 신고전경제는 반(反)마르크스주의(Anti-Marxism)의 대안으로 개발되었다. 이를테면 상품의 가치는 생산에 투입한 노동으로 결정된다는 마르크스주의의 ‘노동가치설’이 각광을 받자, 이에 위협을 느낀 자본계급이 곳센(Gossen)의 효용법칙을 재발견하여 상품의 가치는 소비자의 효용이 결정한다는 ‘효용가치설’을 주창하고 이를 토대로 개발한 것이 신고전경제이다. 이는 이념적으로 자본주의를 위해 헌신하면서 많은 발전을 경험하였다. 특히 왈라스(Walras)와 마샬(Marshall)이 개발한 ‘균형론’은 자본주의적 복지경제의 핵심이 되면서 신고전의 대표적 논리로 자리매김했다. 방법론적으로 보면, 신고전은 수학적 서술 방식을 선택하고, 이에 더하여 ‘다른 조건들이 동일하다면(Ceteris Paribus: CP)’이란 조항을 달아 복잡다단한 삶에서 경제적 요소만을 발췌(Abstract)하여 가공한 논리를 강제적인 성격의 행위 규준으로 요구했다. 그 대표적 사례가 ‘이윤극대화’가설이다. 이를테면 ‘사람’이란 ‘경제적 동물(Homo Oeconomicus)’, ‘사회적 동물(Homo Soziologicus)’, ‘철학적 동물(Homo Philosophicus)’, ‘정치적 동물(Homo Politologicus)’, ‘협동적 동물(Homo Cooperativus)’, ‘문화적 동물(Homo Culturalis)’, ‘종교적 동물(Homo Religiosus)’등 여러 다양한 속성으로 설명이 되지만, 신고전은 이 중에서 ‘경제적 동물’만을 뽑아 이윤극대의 인간모델로 제시하였다. 이 점에서 보면, 신고전의 인간모델은 우리 삶의 일부만 설명하지 전체를 아우른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일부가 전체인 것처럼 이윤극대가 인간의 삶의 목적이고, 이를 달성하는 행위규범으로써 “최소 비용으로 최대의 성과”를 요구하였다. 하지만 이는 설득력이 떨어질 뿐만 아니라 합리라고 할 수 없다. 달리 표현하면, 여러 속성의 인간을 오로지 경제적 동물로만 제단하고 이에 걸맞은 이윤극대의 행동을 요구하는 것은 프로크루스테스(Procrustes)의 고문 침대보다 더 고통스러운 것이다. 이처럼 신고전이 경제적 관계만을 추출하여 가공한 ‘순수경제’가 마르크스주의의 대항마로써 급부상하여 경제학계에서 지배적 위치를 굳혔고, 이후 경제 관련 문헌에서는 ‘정치경제(Political Economy)’의 ‘정치’가 사라지고 ‘경제학(Economics)’이 그 자리를 차지했다. 문제는 이 순수경제가 사실관계를 과도하게 압축하여 현실의 경제를 설명함에 있어 설득력이 없고, 또한 순수경제는 몰(沒)가치의 추상적, 규범적 논리를 강조함으로써 분명한 가치판단이 요구되는 경제정책에서도 쓰임새가 제한된다는 것이다. 이 지적은 이미 1930년대에 제기되었다. 순수경제가 당해 연대의 대공황 극복에 실패한 것이 그 이유이다. 이후 경제문제를 전체사회적 관계에서 파악하는 등 인식의 폭을 넓혀 해법을 모색해야 한다는 주장이 이어지면서 신고전경제에 대한 비판이 쏟아졌다. 이를 요약하면, 신고전의 순수경제가 찾는 것은 예컨대 ‘이윤극대화’처럼 선명도가 높은 답이지, 설득력이 아니다. 설사 설득력이 떨어지더라도 답이 분명하면 이를 선택하겠는 것이다. 이는 억지이다. 경제문제를 다룰 때, 선명성과 설득력을 모두 갖춘 해법이 불가능하다면, 설득력을 선택하는 것이 일반인의 이성과 논리에 합치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아직도 신고전경제의 아집을 걷지 못하고 있다. 이는 특히 미시경제에서의 지배적 현상이다. 그간 수많은 미시경제의 서적들이 나왔지만, 차이라고는 수학적 표현의 난이도가 다른 것뿐이다. 유감스럽게도 1930년대의 지적 수준이 그대로 보호․유지되고 있고, 모든 분야에 그래프의 이용을 즐기는 교재가 수두룩하고, 또한 수학 능력을 과시하는 것처럼 보이는 논문들이 책장을 가득 메우고 있다. 비록 우리의 머리 위에는 해맑은 하늘이 있지만, 우리가 숨 쉬는 공기는 깨끗한 것만 아니다. 이에 반해 우리의 경제학에는 아직도 신고전경제의 맑은 하늘이 지배하고 있다. 하지만 ‘순수경제’만으로 우리의 인간사는 제대로 설명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배우는 것이라고는 오로지 순수경제의 모델이고, 경제적 논리라고 하면 이런 특수한 수리 모델만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이에 우리는 「개발된 것」만 익혔고, 「개발하는 것」을 배우지 못했다. 곳프리드(Johann Gottfried von Herder)의 말을 빌면, “우리는 형식을 찾았지만, 정신을 잃어버렸고, 말을 배웠지만, 활발한 사고의 세계를 알지 못한다. 이제 중요한 것은 특정 학파의 보호․유지가 아니라, 학문의 지속적 발전이다. 이를 위해서는 문제점과 해결방안을 찾아 이를 실현시킬 수 있는 인식력, 조직력, 동기유발력이 촉진되어야 한다. 이는 신고전의 용도폐기를 원한 것이 아니라, 피드백(Feedback)을 통한 신고전의 지속적 발전을 위함이다.

국정기획위원회의 답변

국정기획위원회에서 답변드립니다. 안녕하십니까? '모두의 광장'에 방문하여 귀한 의견을 보내주셔서 감사합니다. 앞으로 국민의 뜻을 받들어 진짜 대한민국을 만들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다시 한번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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