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중장년층의 재취업 문제는 이제 개인의 어려움을 넘어 국가적 위기로 번지고 있다. 40대 중후반만 되어도 직장을 잃으면 다시 일터로 돌아가기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기업들은 나이 많은 지원자에 대해 편견을 갖고, '비싸고 둔한 인재'로 보는 경향이 강하다. 경험과 책임감, 충성심이라는 강점을 보지 못하고, 단순히 연령으로만 평가하는 문화가 고착화되어 있다. 이런 환경에서 퇴직 후 1년 이상 재취업에 실패하는 경우가 60%에 달하며, 재취업에 성공하더라도 수입은 절반 이하로 떨어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현 제도의 문제점은 더욱 뚜렷하다. 고용노동부에서 시행 중인 '신중년 인생 이모작 지원제도'나 '중장년 재취업 지원사업' 등은 실효성이 낮다는 평가를 받는다. 주로 단순 노무직이나 공공일자리 중심이기 때문에, 실제로 경험과 역량을 살릴 수 있는 전문직 채용은 극히 드물다. 또한 민간 기업에 중장년 채용을 유도할 수 있는 강력한 인센티브 제도나, 조직문화 개선 정책이 미비하다. 일부 기업은 여전히 '젊고 싼 인력'을 선호하며, 내부적으로도 나이든 직원에 대한 인사 차별이 구조적으로 남아 있다.
해외에서는 중장년을 '국가적 자산'으로 인식하며, 보다 전향적인 정책으로 대응하고 있다.
-독일은 67세까지 법정 정년을 유지하면서도, 기업과 노동조합 간 단체 협약을 통해 정년 연장과 유연한 근로시간 조정을 유도하고 있다. 특히 '경험 공유 멘토링 제도'를 통해 중장년층이 청년 직원에게 업무 노하우를 전수하도록 장려하며, 정부는 이에 따른 세제 혜택과 보조금을 지원한다. 교육 역시 일-학습 통합 시스템을 통해 지속적으로 직무 전환이 가능하도록 설계되어 있다.
-일본은 70세까지 고용 기회를 보장하기 위해 '고령자 고용안정법'을 개정하고, 모든 기업에 재고용 의무를 부여했다. 이와 함께 지방자치단체는 중장년을 위한 일자리 중개 센터를 별도로 설치해 민간 기업과의 일대일 매칭을 지원한다. 정년 연장에 따른 임금 부담은 '임금 피크제'를 통해 조정함으로써 기업의 반발도 최소화하고 있다.
-스웨덴은 아예 '액티브 에이징'이라는 철학을 바탕으로 전 생애에 걸친 직업 유연성을 강조한다. 중장년층에게도 파트타임이나 프로젝트 단위의 근무 기회를 활발히 제공하며, 정부와 기업, 노동조합이 함께 노사정 협의체를 운영해 이들의 고용 지속 방안을 설계하고 있다.
이제 우리도 근본적인 전환이 필요하다. 단순한 취업 알선이 아닌, 중장년을 위한 일자리 구조 자체를 바꿔야 한다.
첫째, 기업문화 개선을 위한 법제도 정비가 필요하다. 일정 규모 이상의 기업에는 중장년 고용 비율을 공시하도록 하고, 45세 이상 근로자를 일정 비율 이상 고용한 기업에 대해 법인세 감면 및 고용보조금 지원을 강화해야 한다. 특히 채용 면접 시 나이와 관련된 차별적 질문을 금지하는 '중장년 차별금지법' 도입도 검토할 시점이다.
둘째, 인공지능(AI)을 활용한 맞춤형 채용매칭 시스템을 국가 차원에서 개발해야 한다. 예를 들어, AI가 중장년층의 이력과 경험을 분석해 전국의 중소기업, 공공기관, 비영리단체 등에서 필요한 직무와 자동으로 매칭해주는 '중장년 일자리 AI 매칭 플랫폼'을 운영하면 실질적인 구직 성공률을 크게 높일 수 있다. 동시에 채용 기업에는 관련 지원금을 즉시 지급하여 중장년 채용을 촉진할 수 있다.
셋째, 디지털 전환 시대에 맞춘 중장년 직무 재설계가 필요하다. 반복적인 교육이 아니라, 중장년이 본인의 경력을 활용할 수 있도록 기획·컨설팅·관리·감독·코칭 역할로의 전환이 가능하도록 직무 트랙을 개발하고, 이에 맞춘 '시니어 역량 인증제'를 도입하여 검증된 인력이라는 신뢰를 부여해야 한다.
넷째, 정부 및 지자체 주도의 '중장년 공공 프로젝트 파견제'를 운영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디지털화가 필요한 농어촌 지역에 중장년 ICT 전문가를 파견하거나, 공공기관의 민원 응대 개선에 중장년층의 커뮤니케이션 역량을 활용하는 식이다. 이는 일자리 제공과 동시에 공공서비스 질도 함께 향상시킬 수 있다.
지금 중장년은 가족의 울타리이자, 사회를 떠받치는 경험 자산이다. 이들을 다시 일터로 복귀시키는 것은 단순한 복지 정책이 아니라, 대한민국의 미래를 위한 투자다. 중장년의 재기를 위한 혁신적이고 과감한 접근이 필요한 시점이다. 기업문화 개선, 제도 정비, 디지털 매칭 시스템 도입, 직무 구조 재편, 그리고 공공 부문의 실질적인 역할 강화가 모두 병행되어야 한다. 지금이 바로 그 출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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