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2012년 서울에서 귀농하여 완주에 정착한 농민입니다. 귀농 초기에는 생소하고 막막했지만, 마침 그 시기에 로컬푸드 직매장이라는 새로운 유통 시스템이 시작되었고, 이를 통해 어려운 시절을 견뎌낼 수 있었습니다. 지금은 자리를 잡고 그럭저럭 잘 살고 있습니다.
로컬푸드시스템은 열악한 농촌 환경 속에서 저뿐만 아니라 많은 농민들에게 땀 흘린 만큼의 대가를 받을 수 있도록 해준, 매우 **공정한 유통 구조**라고 생각합니다. 현재 완주지역에서도 1,500명이 넘는 농민이 기존 농산물 공판장의 부당한 거래 관행에서 벗어나, 소비자와의 직접 거래를 통해 땀의 대가를 보장받고 있으며, 농민으로서의 자긍심 또한 높아졌습니다.
이 시스템은 매우 훌륭하다고 생각하고, 저 역시 그 덕을 본 농민 중 하나입니다. 자료에 따르면 2021년 기준 전국에 138개소의 직매장이 있고, 2018년에는 매출액이 4,300억 원을 넘어 지금은 그보다 훨씬 많아졌습니다.
하지만 시스템 도입 후 13년이 지나면서, 농촌 고령화와 다양한 문제점들이 드러나기 시작했습니다. 그중 제가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숫자로는 보이지 않는 현실적인 문제들 입니다. 전국적인 통계는 알기 어렵지만, 로컬푸드를 가장 먼저 도입한 완주에서 먼저 문제들이 드러난다는 생각으로 완주를 예로 들어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저는 2013년부터 친환경농업을 해오고 있습니다. 이는 직거래 환경과 공공급식 시장의 영향을 크게 받습니다. 공공급식은 원칙상 친환경농산물을 우선 소비하지만, 지역 학생 수가 적어 소비처로서의 역할이 제한적입니다. 결국 대부분은 직매장에 의존하게 되는데, 직매장에서는 지자체의 로컬푸드 자체 인증제(예: 완주로컬푸드인증)를 우선하여 정책을 추진하다 보니, 친환경 인증 농가는 정책의 우선 대상이 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소비자들도 친환경 인증이 붙은 농산물 가격이 조금이라도 비싸면 구매를 기피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10년 넘게 버텨오던 친환경 농가들도 점점 포기하고 있고, 실제로 최근 3년간 은 매년 약 20% 가까운 농가들이 친환경 인증을 철회했습니다. 머지않아 정말 극소수만이 인증을 유지하게 될지도 모릅니다.
저 역시 친환경에 대한 자부심과 사명감으로 농사를 짓고 있지만, 10년 넘게 지속되는 이 상황 속에서 현실을 외면하기는 어렵습니다.
사실 로컬푸드 인증 기준이 처음 만들어질 때는 GAP와 무농약 인증 사이에 기준을 정해, 친환경 농가가 기준이 되어 전체 농가의 품질을 끌어올리자는 취지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오히려 친환경 농가들이 GAP 수준으로 후퇴하게 되는 결과를 낳고 말았습니다. 그간 여러 번 해결을 위한 노력이 있었지만, 결국은 정책적인 뒷받침 없이는 지속 가능하지 않다고 판단하여 이렇게 글을 쓰게 되었습니다.
그동안 군청이나 관계 기관에 직매장 내에서 친환경 농가에 한해 10% 수준의 소득보전 방안을 만들어 달라고 여러 번 요청했지만, 아무런 답을 받지 못했습니다.
물론 더 크고 중요한 농업 정책들도 많겠지만, 친환경 농가는 이 나라의 환경농업과 학교공공급식의 기초를 지켜온 농민들입니다. 이들이 사라지면 농업 생태계의 한 축이 무너지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두서 없고 긴 글이지만, 농업 관계자분들께서 이 글을 읽고 꼭 이 방식이 아니더라도 직매장 내 친환경 농가를 지속 가능하게 지키기 위한 방안을 고민해주시길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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