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사람들이 친일파 청산, 식민지 잔재 청산에 실패한 우리나라 역사에 대해 안타까워한다. 그러면서도 간과하고 있는 용어가 있는데 그것이 ‘한반도’(韓半島)다.
결론부터 말하면 ‘한반도’는 일제가 부르고 싶어했던 이름이었지, 우리 스스로 우리 땅에 이름을 붙여 만든 단어가 아니다.
우선 ‘반도(半島)’라는 단어는 우리 조상들이 결코 쓰지 않았던 신조어였다. ‘한국고전종합 DB’에 ‘半島’라는 한자를 넣어 검색해 보면 20세기 이전까지는 의미 있는 검색 결과가 단 한 건도 나오지 않는다. 우리 스스로 우리 땅을 단 한 번도 ‘반도’라고 부르지 않았다는 증거다. 따라서 ‘한반도’라는 용어는 따져볼 필요조차 없다.
‘반도’는 영국이나 미국보다 네덜란드 문물을 먼저 받아들였던 일본이 네덜란드어 ‘halfeiland’를 번역해 만들어 낸 근대식 한자어다. ‘halfeiland’는 얼핏 봐도 ‘half’(반)와 ‘eiland’(섬)의 합성어임을 알 수 있다. 영어인 peninsula의 어원 또한 ‘pen’(거의)와 ‘insul’(섬)이어서 일본이 만든 ‘반도’라는 신조어가 그리 나쁠 것 없는 번역이라는 점은 분명하다.
일본은 우리나라를 비하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반도’라는 용어를 지어내지는 않았다. 그러나 우리의 역사를 ‘한반도’ 내로 한정시키기 위해, 나아가 우리의 인식 속에 ‘반도사관’을 심기 위해 ‘한반도’라는 단어를 의도적으로 널리 퍼뜨리려고 한 것은 확실하다.
1903년 11월 경성 한반도사(京城 韓半島社)라는 이름의 회사가 「한반도」 창간호를 발간한다. 한국에 거주하는 일본인이 만든 일본어 종합지였다. ‘한반도’라는 제호 위로 욱일기가 그려져 있는 표지가 모든 것을 말해 준다. 일본인에게 우리 땅은 ‘반도’, 다시 말해 ‘한반도’였다.
2년 후인 1905년 4월 17일자 「황성신문(皇城新聞)」에는 월간지 「독습일어잡지(獨習日語雜誌)」 광고가 게재된다. 경성학당(京城學堂) 내 일어잡지사(日語雜誌社)가 발행하고 경성 이현(泥峴‧충무로) 한반도사 등에서 판매했던 일본어 자습지다. 경성학당은 1896년 4월 일본 ‘대일본해외교육회’가 서울에 설립한 일본어 학교다. 비유하자면 세종학당 격이다.
잡지 「한반도」와 패턴이 비슷하다. 서울을 ‘경성’으로, 우리 땅을 ‘한반도’라고 부르려고 하는 일본의 욕망이 느껴진다.
친일파들 또한 가만있지 않았다. 1906년 11월 소년한반도사(少年韓半島社)라는 ‘괴이한 이름’의 회사가 「소년한반도」 창간호를 발간한다. 경영진과 편집진의 주요 인물은 조중응, 이인직, 이해조 등 친일파 일색이다.
‘소년한반도’가 괴이한 이름인 것은 조금만 생각해 봐도 알 수 있다. 스스로 ‘애국계몽운동’을 표방했으면서도 당시 국호인 ‘대한제국’을 붙이지 않았다. ‘소년 대한제국’ 또는 ‘소년 한국’이었다면 가장 자연스러운 제호(題號)가 됐을 것이다. 백번 양보해서 나라의 별칭이나 국토의 이름을 제호로 쓰고 싶어서였을 것이라고 이해해 줄 수는 있다. 그렇다고 해도 예부터 우리나라를 일컫는 근역(槿域), 진단(震檀), 청구(靑邱), 해동(海東) 등 친숙한 말은 다 제쳐두고 굳이 ‘한반도’라는 신조어를 사용했다.
대한민국 헌법 제3조는 “대한민국의 영토는 한반도와 그 부속도서로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헌법에도 나오는 ‘한반도’라는 단어가 당대인에게는 익숙지 않은 신조어, 또한 신문물이었다는 사실을 유념해야 한다. 반면 일본인이나 일본 언론은 집요하게 우리 땅을 ‘반도’라고 부르려고 했다.
일본인에게 서울은 고유명사 한성(漢城)도, 황제가 사는 황성(皇城)도 아닌, 그저 수도의 성곽일 뿐인 경성(京城)이었다. 그래서 서울에 경성학원과 경성한반도사를 만들었고 「한반도」와 「독습일어잡지」를 발간했다.
‘한반도’라는 단어에는 일제의 음험한 욕망이 투영돼 있다. 해양 세력인 그들이 대륙 진출의 발판으로 여기며 사용했던 지정학적 용어가 ‘한반도’였다. 무엇보다 ‘한반도’는 반도사관의 핵심 용어다.
해방 후 우리는 ‘경성’을 폐기하고 서울이라는 이름을 되찾았다. 하지만 ‘반도’, 또는 ‘한반도’라는 단어의 확산은 일본의 의도대로 대성공을 거둬 우리나라 헌법에도 새겨져 있다.
만약 우리 조상들이 일본인보다 먼저 네덜란드 문물을 받아들여 ‘halfeiland’를 번역했다면 ‘반도’가 아니라 ‘곶(串)’이 됐을 것이라고 확신한다. ‘호미곶’이나 ‘장산곶매’의 용례처럼 ‘곶(串)’은 중국도, 일본도 ‘곶’이라고 발음하지 않는 우리 스스로 만든 고유의 한자다. 사전적인 뜻은 ‘바다로 길게 뻗어 세 면이 바다로 둘려 있는 육지’를 말한다.
‘반도’가 ‘반쪽 짜리 섬’이라면 ‘곶’은 ‘바다로 뻗어나간 육지’라는 뜻이다. 더 고민할 필요는 없지 않을까. '경성'(京城)은 '서울'이 됐는데 '한반도'는 왜 아직도 그대로인가. ‘한반도’ 대신 ‘대한곶(大韓串)’을 쓰자고 제안한다. 우리는 ‘대한곶’으로 부르고 북한은 ‘조선곶’이라고 부르면 되지 않겠는가. 언젠가는 개정될 헌법에도 ‘대한곶’이라는 용어가 당당히 들어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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