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연구재단의 ‘신진연구자지원사업’은 박사학위 취득 후 일정 기간(통상 7년 이내, 의학계열은 10년 이내)의 초기 경력 연구자들이 자율적이고 창의적인 연구를 수행할 수 있도록 국가 차원에서 제도적으로 지원하는 사업이다. 이는 학문 생애주기의 초기 단계에서 안정적인 연구환경을 제공함으로써 연구자 개인의 학문적 성장과 더불어 국내 학술생태계의 지속 가능성을 확보하고자 하는 정책적 의도를 담고 있다.
그러나 최근 이 사업은 심각한 전환점을 맞고 있다. 2023년과 2024년을 거치며 정부의 전반적인 연구개발(R&D) 재편 기조에 따라 신진연구자 대상 사업의 예산 역시 축소되었으며, 선정 인원 역시 대폭 감소하였다. 그 결과, 지원을 준비하던 많은 박사 후 연구자들이 제도 밖으로 밀려나거나 반복된 탈락으로 연구 의지를 상실하고 있다. 이는 단순한 숫자의 감소에 그치지 않고, 국가가 젊은 연구자들에게 보내는 상징적 메시지로서의 ‘기회의 박탈’로 해석된다. 그로 인한 사기 저하는 연구계 전반의 혁신 동력을 약화시키고 있다.
본 제안은 현행 제도의 틀을 전면적으로 부정하기보다는, 그 운영 방식의 ‘방향성 전환’을 요청한다. 구체적으로, 개별 연구비 단가를 일정 수준 조정하더라도 수혜 인원을 대폭 확대함으로써 보다 많은 신진연구자들이 국가 연구지원 체계 안에서 자발적이고 창의적인 연구를 지속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해야 한다는 것이다.
현재 신진연구자사업의 연구비 규모는 연간 약 1억 원 내외로 설정되어 있으나, 현실적으로 이 금액이 대형 실험 장비나 공동연구 없이 수행되는 인문사회, 기초과학 분야의 연구자에게 반드시 필요한 수준인지에 대해서는 검토가 필요하다. 오히려 6,000만 원에서 7,000만 원 수준의 예산이라 하더라도 연구를 충분히 수행할 수 있는 영역이 많으며, 이로 인해 수혜 인원을 30~50% 이상 확대할 수 있다면 국가 전체의 연구 다양성과 확산 효과는 더욱 높아질 것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기회의 총량’이다. 젊은 연구자들에게는 한 번의 선정 경험이 단순한 재정 지원을 넘어, 학문적 자존감과 장기적인 연구계 진입의 관문으로 기능한다. ‘선정되었다’는 제도적 인정은 연구자 개인에게는 향후 중견연구, 집단연구, 국책과제 진입을 위한 경력자산으로 작용한다. 반면 연속적인 탈락은 연구자로서의 자기정체성을 약화시키고, 결국 학문 현장에서의 이탈을 가속화하는 요인이 된다. 이러한 이탈은 단지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국가가 축적해온 고급 인적자원의 구조적 손실이다.
따라서 지금 필요한 정책 기조는 ‘소수의 집중 육성’이 아니라 ‘다수의 점화(ignition)’이다. 다양한 분야와 배경의 신진연구자들이 각자의 방식으로 문제를 탐색하고 아이디어를 실험할 수 있도록 작은 기회를 폭넓게 제공하는 것이 지속 가능한 연구생태계를 위한 가장 기초적인 투자다.
결론적으로, 한국연구재단의 신진연구자지원사업은 그 본래의 취지를 다시금 상기해야 한다. 본 제안은 단순히 예산 증액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기존 예산 범위 내에서도 보다 공정하고 포용적인 방식으로 자원의 재분배가 가능하다는 점을 강조하는 것이다. 젊은 연구자들이 “연구자로 살아도 된다”는 제도적 신호를 받을 수 있도록, 이제는 수혜 단가 중심이 아닌 수혜 인원 중심의 패러다임 전환이 필요하다. 대한민국의 연구미래는 오늘 우리가 얼마나 많은 ‘기회의 문’을 열어주느냐에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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