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클래식 음악계에서 '초대장 문화'는 오랜 시간 해결되지 않은 병목 구조로 남아 있다. 연주자가 자비로 공연장을 대관하고, 상당수의 티켓을 무료로 지인에게 배포하는 구조는 표면적으로는 '나눔'이지만 실상은 예술 노동에 대한 사회적 평가가 실종된 결과다. 특히 공공 공연장조차 이 같은 관행을 답습하며, ‘공연은 연주자가 감당하는 개인적 이벤트’로 전락해버렸다.
이러한 병폐가 지속되는 구조적 원인 중 하나는 예술대학을 중심으로 한 교수 인사제도와 연계된 연주 실적 평가 시스템이다. 현재 예술대 교수들은 예술의전당, 세종문화회관, 롯데콘서트홀 등 일정 규모 이상의 공연장에서 독주회를 개최할 경우 인사평가상 높은 점수를 부여받는다. 그 결과 대형 공연장은 교수들의 전유물이 되고, 신진 연주자나 프리랜서 예술가에게는 대관료조차 감당하기 어려운 진입장벽이 형성된다.
이제는 공연 예술의 공공성과 자생력을 회복하기 위한 구조적 전환이 필요하다. 단지 초대장을 없애는 것이 아니라, 실력 있는 예술가가 돈 없이도 무대에 설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드는 것이 정책의 핵심이 되어야 한다. 이에 따라 다음과 같은 제도적 대안을 제시한다.
첫째, 공공 공연장의 무상 대관 기회를 대폭 확대하고, 지역문화재단 중심의 ‘공개 오디션 기반 대관 시스템’을 도입해야 한다.
현행 대관 제도는 서류 평가나 추천인 중심으로 운영되어 기회의 공정성이 확보되지 못하고 있다. 이에 따라 지역문화재단이 중심이 되어 연 2회 이상의 공개 오디션을 실시하고, 이를 통해 신진 연주자에게 무상 대관 및 공연 기회를 제공하는 구조가 필요하다. 이 제도는 청년 예술가의 자립 기반을 조성하는 동시에, 지역 사회의 문화 다양성을 강화할 수 있다.
둘째, 교육부와 문화체육관광부는 예술대학 교수 승진 제도에 ‘공공 연주 실적’ 항목을 도입해야 한다.
지금처럼 상업적 대형 공연장 실적만을 실적으로 인정할 경우, 공공 무대에의 참여는 ‘무가치한 활동’으로 간주된다. 이를 개선하기 위해, 지역문화재단과의 협업 무대, 공개 오디션 선정 무대, 청중 참여형 사회공헌 공연 등에 대해 실적 점수를 부여하거나 별도 항목을 신설해야 한다. 이는 교수 집단의 지역 공연장 참여를 유도하고, 공연 생태계의 수직 독점을 완화할 수 있는 실효적 수단이 될 것이다.
셋째, 오디션 심사 구조의 개편이 필요하다.
심사위원단은 전통적인 교수·지휘자 중심의 폐쇄적 구조에서 벗어나, 비전공자 청중, 온라인 투표단, 지역 음악 애호가 등 다양한 배경의 인물들을 포함하는 형태로 확장되어야 한다. 이는 “누구를 위한 공연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정책적 해답이자, 공연이 사회적 의미를 갖기 위한 기반이다. 청중 중심의 심사 시스템은 예술을 평가하는 방식의 민주화를 의미하며, 예술과 대중 간의 거리도 좁혀줄 것이다.
넷째, 이러한 구조는 연주자 개인에게만 혜택을 주는 것이 아니라, 지역 사회 전체의 문화 저변을 확대하는 공공적 효과를 지닌다.
신진 연주자들의 무상 공연은 단지 실험적 예술이 아니라, 지역 주민에게는 정기적이고 품격 있는 문화 향유의 기회가 된다. 특히 청년층, 고령층, 문화소외계층을 위한 맞춤형 기획과 연계하면, 지역 사회의 문화 접근성과 다양성을 동시에 확보할 수 있다. 공연은 단지 음악가의 활동이 아니라, 공동체의 예술 경험이 되어야 한다.
궁극적으로 우리가 지향해야 할 문화정책은 ‘돈 있는 자만이 무대에 설 수 있는 구조’가 아니라, ‘실력 있는 자에게 기회가 열리는 생태계’이다. 부산콘서트홀의 ‘초대장 없는 공연장’ 실험은 그 시작이자 상징이다. 그러나 진정한 변화는 무상 대관의 확대, 공개 오디션 기반 무대 진입, 평가 체계의 민주화, 그리고 예술대 인사제도의 공공성 반영이 함께 작동할 때에야 가능하다.
‘꽃보다 티켓이 아름답다’는 말은, 연주자가 자신의 예술을 떳떳하게 관객에게 전달할 수 있을 때 성립한다. 예술의 존엄은 무대 위의 손끝이 아니라, 그 무대를 설계하는 정책의 손끝에서 결정된다. 지금이야말로 대한민국의 공연 예술정책이 그 방향을 다시 그려야 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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