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가평군정신건강(자살예방)복지센터에서 사례관리자로 근무하고 있습니다. 국민의 생명을 보호하고 위기 상황에 개입하는 역할을 하며 수많은 현장을 접해 왔습니다. 그중 특히 가슴 아팠던 한 사례를 바탕으로 현행 제도의 한계에 대해 말씀드리고, 개선을 요청드리고자 합니다.
최근 행정복지센터의 의뢰를 받아 방문한 사례는 다음과 같습니다.
경제적 어려움으로 인해 한 달 가까이 식사를 제대로 하지 못한 채 뼈만 앙상하게 남은 한 어르신이 단전·단수 상태의 집에서 쓰러져 계셨습니다. 대소변 실수로 위생 상태도 매우 열악했으며, 물만 마셔도 울렁거리고, 움직임조차 거의 불가능한 상태였습니다. 스스로 생존 의지를 포기한 듯한 상황이었으며, 자·타해 위험 신고로 경찰, 소방, 정신건강복지센터, 노인전문기관 모두 출동했으나, 본인이 병원 이송을 완강히 거부하였고, 결국 아무런 조치도 할 수 없는 채 돌아올 수밖에 없었습니다.
경찰은 강제 입원 요건이 되지 않으며 정신질환보다는 신체질환의 문제로 판단된다고 하였습니다. 병원 역시 자의가 아닌 이상 받아주기 어렵다고 하였습니다. 보호자는 경제적 사정으로 환자를 돌볼 수 없는 상황이었고, 입원을 원했음에도 불구하고 환자의 동의 없이는 어떤 기관도 개입이 불가능했습니다.
이런 사례는 이번 한 번이 아닙니다.
우리는 명백히 생명이 위태로운 상태의 사람을 눈앞에 두고도, 현행법상 개입할 수 없다는 이유로 방치하게 됩니다. 단전·단수, 극도의 영양실조, 심각한 위생 문제 등 생존 자체가 위협받는 상황인데도, '정신질환으로 인한 자·타해 위험'의 엄격한 기준에만 근거하여 개입하지 못하는 현실은 개선되어야 합니다.
자살이 꼭 약물이나 도구로만 이뤄지는 것이 아닙니다. 스스로 생존을 포기하고, 치료를 거부하며, 점차 생명이 소진되는 상황 또한 자살의 한 형태로 보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에 다음과 같은 정책 개선을 건의드립니다
[개선 요청 사항]
자·타해 위험 판단 기준의 확대
자살 또는 생명 위협의 개념을 ‘직접적인 자해’뿐 아니라, ‘치료 거부로 인한 생명 위협’까지 확대하여 적용할 수 있도록 법령을 개정해 주십시오.
응급위기 개입 권한 강화
경찰, 소방, 정신건강전문기관이 현장에서 명백히 입원이 필요하다고 판단되는 경우, 일정 요건 하에 보호자 또는 보호자가 없는 경우 기관들의 동의만으로도 응급입원이 가능하도록 제도를 보완해 주십시오.
병원의 수용 거부 제한
응급 개입 시, 공공병원 또는 지정병원이 응급입원을 거부하지 못하도록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 주십시오.
사람이 죽어가는 것을 알고도 법과 제도 때문에 손을 놓아야 하는 현실에 현장의 담당자로서 깊은 무력감을 느낍니다. 국민의 생명을 지키기 위해 일하는 수많은 사람들의 노력이 제도적 공백 앞에 좌절되지 않도록, 간절한 마음으로 정책 개선을 요청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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