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 10개 만들기 프로젝트? “교육의 질은 교사의 질을 넘지 못한다”
“가득 찬 것은 쏟아내고, 모자라는 것은 채우며, 추운 것 것은 따뜻하게 하고, 뜨거운 것은 차게 하는 것이 의술의 방법이니, 누군들 알지 못하겠는가. 또한 준보(峻補,몹시 센 보약으로 치료하는 방법), 평보(平補,맛이 달고 성질이 평한 보약으로 치료하는 방법), 준공(峻攻,몹시 세게 치료하는 방법 ), 미리(微利, 약간 이롭게 치료하는 방법)와 온이리(溫而利,따뜻하고 이롭게 치료하는 방법) 등이 있으니, 이는 오로지 의사의 ‘통변(通變)’에 달려 있다.”
위 글은 연암(燕巖) 박지원(朴趾源,1737~1805) 선생이 지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익감(翼鑑)』에 보이는 글이다. 『익감』은 『동의보감』에서 발췌하였지만 웬만한 질환에 대비토록 완전히 새롭게 구성한 가정의학서이다. 선생의 저 말은 어떠한 의사를 만나느냐에 따라 환자의 병증이 달라진다는 의미이다. 선생은 환자의 병증이 오로지 의사의 ‘통변’에 달려있다고 한다.
‘통변’은 변통과 같은 뜻이니, 형편과 경우에 따라서 일을 융통성 있게 잘 처리한다는 정도의 의미다. ‘통변’은 의사뿐이 아니다. 유협(劉勰,465~521)이 지은 문학서인 『문심조룡』에서는 창작론에 해당하는 제29장의 제목이기도하다. 이 장에서 유협은 변화에 능숙해야 창작 활동을 오래도록 지탱하고 전통에 익숙해야 모자람이 없다고 하였다. 즉 문학이 발전하기 위해 창작자가 지녀야 하는 태도를 단 두 글자 ‘통변’으로 뽑은 것이다. 이 장은 『문심조룡』의 여러 장들 가운데 가장 뛰어나다고 평가받는다.
의사의 통변과 작가의 통변을 한마디로 잘라 말하면 모두 배운 지식 그대로가 아닌 환자와 문학작품에 따라 변화를 꾀해야한다는 의미이다. 통변이 여하함에 따라 환자는 병세가 악화하기도 기적같이 쾌차하기도 하며, 작품은 졸작도 세계적인 명작도 나온다. 문제는 이 통변을 하자면 의사와 작가로서 뚜렷한 ‘사명감과 의식’[소명의식]이 있어야만 한다는 사실이다.
교육 역시 그렇다. 학생은 어떠한 교사를 만나느냐에 따라 천재도 바보가 되고 바보도 보통사람은 넉넉히 된다. 그러니 보통 학생도 교사를 잘 만나면 천재가 될 희망이 가능하다. 여기에 잇대는 말이 ‘교육의 질은 교사의 질을 넘지 못한다’는 금언이다.
이 정부에서 ‘서울대 10개 만들기 프로젝트’를 한단다. 그런데 이를 추진할 교육부장관이 저 프로젝트를 해결할 수 있을까? 지금까지 필자는 33년 동안을 교육자로 이 땅에서 살아왔다. 물론 그동안 초·중·고를 거쳐 대학과 대학원 박사과정까지 20여년을 피교육자로도 보냈다. 이 과정을 거치며 헤아릴 수 없는 동료 교사들과 교수들을 만났다. 하지만 한 손의 손가락 다섯 개도 못 헤아린다. “당신이 만난 교사와 교수들을 합쳐서 교육자로서 저 위의 ‘통변’을 하는 교사다운 교사를 꼽으라”하면.
교사자격증을 가진 교사와 박사학위를 가진 교수는 있었지만 진정한 선생은 없었다. 연암 선생은 저 위 글에서 ‘병사가 많다고 좋은 것은 아니다’라고 하였다. 여기서 병사는 의약 재료이니, 교육으로 치면 커리큘럼이나 교재 정도로 이해하면 된다. 제 아무리 커리큘럼과 교재가 좋아도 이를 가르치는 교사[교수]가 의식이 없으면 학생이 아무리 공들여 학문의 탑을 쌓아도 무너지니, 모래 위에 지은 누각에 지나지 않는다. 이는 통변을 못하는 의식 없는 교사[교수]가 지식만을 요구하다 학생이 갖고 있는 잠재력을 알아보지 못해서다.
따라서 교사[교수]는 ‘천직(天職)’, 즉 단순한 직업이 아닌 ‘하늘이 부여한 소명’ 의식을 갖고 학생들 앞에 임하여야 한다. 현대 사회사상가 중에서 가장 큰 영향력을 행사한 사람으로 꼽히는 막스 베버(Max Weber,1864~1920)가 ‘신에게 받은 소명(Calling)’의 신성한 직업으로 교육자를 꼽는 이유도 여기 있다. 베버는 이를 ‘개인이 신으로부터 부여받은 소명’으로서 ‘직업 천부설(職業天賦說)’이라고 까지 하였다. ‘교사의 소명감[사명감과 의식]’은 ‘통변’으로 이어져, 교사 자신의 역량과 만족도·행동 의도, 그리고 학생의 학업·심리적 안정성까지 폭넓게 영향을 미치는 핵심 변수이기 때문이다. ‘교육의 질은 교사의 질을 넘지 못한다’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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