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재집권은 국제 질서 전반에 다시 한 번 중대한 변화를 예고하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는 1기 집권 당시 미국 우선주의(America First)를 외교·경제 전반에 관철시키며 동맹국들까지 예외 없이 관세 부과, 통상 규제, 방위비 분담 증액 등을 강력히 추진한 바 있다. 이번 재집권은 그 연장선 위에 있으며, 미국의 보호무역주의는 더 집요하고 구조적으로 강화될 가능성이 크다. 특히 트럼프 행정부는 공급망의 자국 중심 재편, 해외 생산에 대한 보복 관세, 중국과의 디커플링 심화, 미국 내 제조업 회귀라는 기조를 강하게 밀어붙이고 있다. 그 과정에서 한국은 주요 무역 파트너이자 기술 경쟁국 그리고 동맹국이라는 복합적 위치에서 다층적인 압박에 직면할 수밖에 없다. 자동차, 반도체, 배터리, 철강, 인공지능, 의약품 등 전략산업 전반에서 한국은 미국의 통상 압박과 산업 보조금 정책의 영향을 직접적으로 받게 될 것이다.
이러한 시대적 환경 변화 속에서 한국은 단순히 방어적 외교와 개별 산업 대응만으로는 생존할 수 없다. 오히려 통상과 외교, 기술과 산업, 교육과 인재양성, 규범과 가치까지 포괄하는 통합적 전략을 통해 미국과 일본을 동시에 설득하고 함께 질서를 설계해나가야 한다. 바로 이 지점에서 2023년 한미일 정상이 발표한 캠프 데이비드 선언의 전략적 가치가 부각된다. 이 선언은 군사 안보 협력을 넘어, 공급망 안정, 신기술 개발, 정보 공유, 교육 교류, 규범 정립 등 다양한 분야에서 한미일 3국 간 협력을 제도화한 이정표다. 무엇보다도 이 선언은 가치 중심의 동맹, 즉 민주주의, 인권, 개방성, 시장경제를 기반으로 한 파트너십을 강조하며, 미국이 요구하는 실용성과 일본이 요구하는 제도적 안정성, 한국이 지향하는 기술 협력의 실익을 모두 담고 있다. 선언 그 자체는 이상적이지만, 실제 효과를 발휘하기 위해서는 선언을 실천하는 구체적 플랫폼이 필요하며, 그 중심축은 바로 한미일 3국의 대표 대기업과 최고 수준 대학들 간의 실질적 협력이다.
삼성, SK, LG, 현대 등 한국을 대표하는 글로벌 기업들은 반도체, 배터리, 전기차, 인공지능, 바이오, 에너지 전환 등 핵심 전략산업에서 이미 미국과 일본에 대규모 투자 및 생산기지를 운영하고 있다. 이들 기업은 단순한 제품 수출을 넘어, 미국 내 공장을 세우고 인재를 고용하며 공동기술개발에 참여하는 방식으로 미국 경제에 기여하고 있다. 반면 트럼프 정부는 이러한 외국 기업의 활동조차도 자국 내 가치사슬 통합, 고용 창출, 기술 자립 등의 명확한 이익과 연결되지 않으면 무역규제로 대응할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한국 기업들이 단순한 투자자가 아닌 미국 기술·산업 생태계의 핵심 파트너로 인식되기 위해서는 지속적이고 제도화된 협력 구조가 필요하다. 그 구조는 산업계만으로는 부족하며, 대학과의 협력이 반드시 병행되어야 한다.
서울대, 연세대, 고려대, POSTECH, KAIST 등 한국의 주요 대학들은 기술연구뿐 아니라 정책, 경영, 법제, 국제협력, 사회혁신 등 다양한 분야에서 경쟁력을 보유하고 있으며, 이미 미국 및 일본의 유수 대학들과 산발적인 협력 경험을 쌓아왔다. 여기에 일본의 도쿄대, 교토대, 오사카대, 게이오대, 와세다대 등과 미국의 아이비리그 대학들—하버드, 예일, 프린스턴, 콜럼비아, 펜실베이니아, 브라운, 다트머스, 코넬—을 포함한 전략적 제휴가 추진된다면, 이는 단순한 연구협력을 넘어 국제 정책, 기술규범, 경제안보, 교육혁신을 함께 설계하는 삼각 협력 구조로 확장될 수 있다. 특히 미국 아이비리그는 연방정부 및 산업계와의 깊은 네트워크를 보유하고 있어, 한국과 일본의 대학·기업이 이들과 구조적 협력을 구축할 경우, 미국 의회 및 행정부 설득에도 유리한 외교적 자산이 된다.
이러한 협력은 이공계에만 머물러서는 안 된다. 트럼프 정부의 기술통제 및 산업정책은 법적 규제, 통상협정, 투자심사, 지식재산권, 데이터 주권, 정보보안 등 광범위한 비기술 영역과 직결되어 있으며, 여기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인문학, 사회과학, 법학, 행정학, 국제정치, 경영학 등 비이공계 분야의 전문성이 필수적이다. 따라서 캠프 데이비드 선언의 실천 플랫폼은 기술연구소뿐 아니라 공공정책센터, 글로벌 규범 연구소, AI 윤리 포럼, 통상법 협력체, 교육혁신 네트워크 등 다양한 형태로 구성될 수 있으며, 이 모든 구조에 기업과 대학이 공동으로 참여해야 한다. 예를 들어 서울대·도쿄대·하버드 로스쿨이 공동 설립하는 ‘AI와 국제법 센터’, 고려대·오사카대·예일대가 주관하는 ‘기후경제와 ESG 경영 플랫폼’, KAIST·MIT·교토대가 운영하는 ‘반도체 AI 기술과 인재교류 허브’ 등이 그것이다. 이 구조가 실현될 경우, 트럼프 정부의 정책 방향에 정면으로 부합하면서도, 한미일 3국의 전략적 이해관계는 안정적으로 결합될 수 있다.
결국 트럼프 정부의 무역전쟁은 방어가 아닌 전략적 설계와 제도화된 실행으로 대응해야 한다. 캠프 데이비드 선언은 그 틀을 제공하며, 이를 실천하는 주체는 정부만이 아니라 기업과 대학이 함께해야 한다. 특히 한국은 기술력과 산업 기반을 갖춘 국가로서, 미국과 일본을 잇는 산업·기술·교육 공동체의 허브가 될 수 있다. 이것이 실현되려면 기존의 개별 협력에서 벗어나, 국가 전략 차원의 통합 설계가 필요하다. 삼성, SK, LG, 현대 같은 기업이 주도하고 서울대, 연세대, 고려대, KAIST, POSTECH 등이 학술적으로 뒷받침하며, 도쿄대·교토대와 아이비리그가 함께 참여하는 플랫폼이 구축되어야 한다. 여기에 미국 연방정부, 주 정부, 싱크탱크, 산업단체들이 파트너로 참여하면, 한미일은 단순한 동맹을 넘어 미래를 설계하는 실천공동체로 진화하게 될 것이다.
이제 우리는 선언이 아닌 행동이 필요한 시점에 와 있다. 캠프 데이비드 선언을 선언으로 남겨서는 안 되며, 그것을 실천하는 구체적 구조와 전략을 제안하고 실행해야 한다. 트럼프 정부의 통상 압박을 견디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그것을 기회로 바꾸어 한미일의 공동 번영을 가능케 하는 구조를 만드는 것이야말로 한국이 가야 할 길이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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