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 반의 언론 길들이기 정부와 6개월의 내란 시기를 거쳐 국민주권 정부가 시작됐다. 이재명 정부 출범 후 그 어느 때보다 언론, 검찰, 사법부에 대한 개혁 요구가 거세다. 민주당 당 대표에 출마한 두 후보 모두 3대 개혁을 신속하게 추진하리라 공약하고 있다.
3대 개혁 중 검찰, 사법부에 대한 개혁은 집권 민주당과 군소 야당에서 구체적인 방안과 로드맵이 논의되고 있다. 언론개혁은 방송 3법 개혁 외에 공론장으로서 언론의 역할을 제고하기 위한 논의가 활발하게 진행되지 않고 있다. 취재보도, 표현의 자유를 기반으로 하는 언론에 대한 개혁은 자유를 제한한다는 반발에 부딪히기 쉽기 때문에 섣부르게 접근하기 어렵다.
일부 공영방송을 제외하고 대부분의 언론은 민간기업이다. 민간기업이면서 국민의 알권리를 대변하고 여론을 형성하는 공공적인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2천년대 이후 인터넷이 보급되면서 국내에 등록된 신문은 1만 5천여 개를 넘어서고 있다. 2010년 모바일 시대 이후 등록된 언론은 아니지만 시사 방송을 하는 유튜브 채널도 범람하고 있다.
한국의 뉴스 전반에 대한 신뢰도는 31%로 전 세계 조사대상 48개국 중 37위로 하위권에 위치해 있다.(한국언론진흥재단-로이터저럴리즘연구소 온라인 설문조사. 2025.1.15.∼2.14.) 언론의 정파적, 선정적 보도에 의한 국민의 스트레스 상승이 언론개혁에 대한 국민요구로 분출되고 있다. 특히, 정부정책이나 형사사법 관련 보도는 정부, 검찰, 법원의 발표자료를 그대로 보도해 대부분 언론이 동일한 보도를 하고 있다. 우리 사회 내의 감추어진 문제를 파헤치고 해결방안을 모색하는 심층보도는 찾아보기 힘들다. 인터넷, 모바일에 기반한 미디어 채널이 늘어나면서 가짜뉴스, 허위정보의 위험성도 높아지고 있다. 허위정보에 의한 피해를 방지하기 위한 방안으로 징벌적 손해배상제가 논의되지만 언론계나 대중 사이에서 찬반이 갈라지고 있다.
언론에 의한 국민 피해를 구제하기 위한 방안과 별도로 국민이 언론에 대한 주권을 행사하는 방법은 없을까? 국민의 직접 참여를 통한 언론 주권 행사의 방법으로 미디어 바우처 제도를 검토할만 하다. 미디어 바우처 제도는 국민에게 연간 일정 금액의 바우처를 지급해 국민이 양질의 기사를 후원하는 방식이다. 후원 받을 수 있는 언론은 1년 이상 정상 발행(방송)되고 관련 법령을 미위반하며 언론자율 심의에 참여하는 매체로 한정한다. 후원 받을 수 있는 기사도 교육·환경·복지·경제·정치·국제·농업 분야 기사 및 탐사보도, 사회적약자 보도, 공익보도 등으로 한정되어야 한다. 연예·스포츠·날씨·증권 분야 기사 및 가짜뉴스, 단순사실보도, 통신기사 전재, 어뷰징 기사는 제외한다. 후원대상 언론의 선정, 후원받는 기사의 적정성 여부를 판단하기 위해 미디어 바우처 심의위원회를 구성해 운영할 필요가 있다. 심의위원은 언론인, 언론학자, 법조인, 국민대표 등 5∼9인으로 구성해 전문성을 확보해야 한다. 심의위원회는 후원 언론사·기사범위 선정, 후원된 기사 적정성 판정, 바우처 집행 · 회수, 최종정산 등을 승인하며 매월 개최해 실효성을 확보할 수 있다.
국민이 바우처를 통해 양질의 언론 기사를 후원함으로써 고품질 저널리즘을 독려하고 미디어 리터러시 능력 향상도 기대할 수 있다. 문화체육관광부 소속 한국언론진흥재단은 매년 공모를 통해 국내 신문, 방송의 기획취재를 지원하고 있다. 공적자금이 투여되지만 국민의 직접적인 참여는 없다. 미디어 바우처 사업은 공적자금을 통한 미디어 후원에 국민이 직접 참여하는 데에 의미가 있다. 국민이 양질의 기사를 직접 선택, 후원함으로써 언론에 대한 주권을 긍정적인 방식으로 실현하는 것이다. 사회적 가치에 기반한 기사만을 후원 대상으로 함으로써 환경, 복지, 사회적약자 등 공익보도의 증가도 기대된다. 공익보도의 증가는 언론 미디어의 공론장 역할을 강화할 수 있을 것이다.
언론 미디어의 공론장 역할 복원은 언론에 대한 국민의 신뢰회복에도 기여하고 바우처를 지원 받는 언론의 경영여건 개선에도 기여해 국민–언론–공론장으로 이어지는 선순환 구조를 정착시킬 수 있다. 국민의 미디어 후원은 대부분의 수입을 광고에 의존하는 국내 미디어 환경에서 언론에 대한 광고주 지배 위험을 감소시키는 효과도 기대된다. 국민의 70% 이상이 온라인 플랫폼을 통해 뉴스를 접하나 기사구독의 유료화가 어려운 현실에서 장기적으로 온라인 뉴스 구독의 유료화에도 기여할 것이다. 포털-언론사 간 광고료 배분으로 포털에 종속된 미디어 환경 개선도 기대할만 하다.
미디어 바우처는 세계 최초의 국민 직접 참여 미디어 후원 제도다. 지원대상 미디어, 후원기사 범위, 지원방식, 후원국민 범위 등 촘촘한 논의가 필요하고 몇 년 간의 시범사업을 통해 보완이 필요하다. 수년 간의 미디어 바우처 시범사업 기간에는 법령 미위반, 자율심의 참여 등 기본요건을 충족하는 언론만 후원대상 미디어로 한정하지만 사업이 정착된 후에는 양질의 유튜브 채널도 후원대상 미디어에 포함시킬 수 있다. 미디어 생태계가 플랫폼 중심으로 개편된 상황에 유튜브 채널, 1인 미디어 등을 후원함으로써 미디어 산업, 인력 육성에도 기여할 수 있다.
지난 6월 26일 국회에서 ‘미디어 바우처 제도 도입 세미나’(노종면 더불어민주당 의원실 주최)가 열렸다. 이날 세미나에서는 미디어 바우처를 지역언론에 적용했을 때의 실행 가능성, 바우처 실행을 위한 공적자금의 조성 방안, 운영주체, 후원대상, 방식 등에 대한 논의가 진행되었다. 민주당 김승원 의원은 21대, 22대 국회에서 꾸준히 ‘미디어 바우처법’(국민 참여를 통한 언론 영향력 평가 제도의 운영에 관한 법률안)을 대표 발의해 왔다.
국민주권 정부 시작 후 정부와 언론의 관계가 재정립되고 있다. 대통령실은 기자실에 카메라를 늘려 대변인뿐 아니라 질문하는 기자들을 카메라에 담아 KTV를 통한 생중계를 시작했다. 국정기획위원회에서 이재명 정부 국정과제 정립과 로드맵을 준비하고 있다. 언론개혁 관련 논의에 언론에 대한 국민주권 실현 방안으로 미디어 바우처 제도가 포함되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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