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벌개혁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커지는 가운데 JP모건은 지배구조가 개선될 경우 코스피가 5000까지 상승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아래 경향신문의 윤지원 기자의 두 개의 글에 따르면 이는 공정한 시장 질서 확립이 한국 경제의 잠재력을 극대화하는 열쇠임을 시사한다. 국회와 정부와 재계의 실질적 개혁이 절실하다.
https://n.news.naver.com/mnews/article/033/0000049101?sid=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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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 되시고 나서 자서전을 읽어봤습니다.”
지난 6월 13일, 이재명 대통령과 5대 그룹 총수·경제 6단체장 간 간담회에서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건넨 이 말로 회담 분위기는 화기애애해졌다. 이재명 정부 출범 이후 두 사람의 첫 공개 회동이었으며, 대통령은 간담회에서 “인사 추천도 여러분께 부탁드렸고, 의견을 존중하려 한다”고 밝혀 기업 친화적인 메시지를 보냈다.
이재명 대통령은 선거 과정에서 뚜렷한 재벌개혁 공약을 내놓지 않았으며, 상법 개정안도 민주당이 오래전부터 추진해온 내용이었다. 인사 기조나 국정 철학 등을 볼 때, 새 정부는 대기업을 개혁 대상이 아닌 성장 파트너로 삼을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삼성의 지배구조 문제는 여전히 개혁의 사각지대로 남아 있다. 삼성은 이재용 회장→삼성물산→삼성생명→삼성전자로 이어지는 피라미드형 구조로 이 회장은 1.63% 지분으로 삼성전자를 실질 지배한다. 삼성생명이 보유한 삼성전자 지분은 금산분리 원칙과도 충돌한다.
삼성생명은 삼성전자 보통주 8.51%(약 36조 원 상당)를 보유 중이며, 이 지분은 삼성전자 주가에 따라 삼성생명의 지급여력비율(RBC)에 큰 영향을 준다. RBC는 2023년 2분기 201.5%에서 올해 3월 말 177.2%로 하락했는데, 금리 외에 삼성전자 주가 하락이 주요 원인으로 지목된다.
과거 삼성생명은 유배당 보험 가입자들의 돈으로 삼성전자 주식을 매입했고, 이에 따라 이익을 계약자에게 배분해야 할 회계 문제가 발생했다. 금융당국은 2010년 삼성생명 상장 당시 해당 이익의 33%를 ‘계약자 지분 조정’이라는 부채로 계상하도록 했고, 삼성은 이를 따랐다.
하지만 2023년 도입된 IFRS17 기준에 따르면 매각 의사가 없다면 이를 ‘자본’으로 처리해야 한다. 그럼에도 금융당국은 2022년 삼성생명에 예외를 허용했고, 이후 삼성생명이 일부 삼성전자 주식을 매각하면서 기준을 어긴 것이 논란이 되고 있다.
삼성은 삼성전자가 자사주 소각을 예고하면서 금산분리 한도를 넘길 위험을 막기 위해 0.07% 수준의 지분을 선제적으로 매각했지만, 이는 당초 회계 특례의 전제 조건과 모순된다. 업계에서는 이를 ‘영구일탈 시도’로 평가하며, 국제 기준에 어긋난다는 비판이 나온다.
이와 관련한 ‘삼성생명법’은 보험사가 보유한 계열사 주식을 시가 기준으로 계산하도록 해 삼성생명이 삼성전자 주식을 대거 매각해야 하는 상황을 초래할 수 있다. 그러나 이 법안은 19대 국회 이후 매번 발의됐지만 통과되지 못했다. 전문가들은 삼성이 로비를 통해 법안 저지를 지속해왔다고 지적한다.
새 정부의 인사에서도 삼성 출신 인사들이 포진해 있다. 민정수석, 기재부 장관 후보자 등 주요 요직에 삼성 관련 이력이 있는 인물들이 기용되었으며, 이는 재벌 개혁보다 친기업 정책이 우선될 가능성을 보여준다.
서울대 박상인 교수는 “이재명 대통령은 대선주자가 된 이후 재벌개혁에 침묵하고 있다”며 “경제정책 라인도 규제 완화에 초점이 맞춰져 재벌개혁 의지는 보이지 않는다”고 평가했다.
피로감이 큰 기사[취재 후]
재벌개혁. 이 네 글자는 누군가에겐 생경하고, 누군가에겐 식상하기 그지없을 것이다. 박근혜·문재인 정부 때만 해도 정치권에서 늘 들려왔던 이 네 글자는 윤석열 정부를 거치면서 자취를 감췄다. 오히려 재벌은 개혁의 대상이 아닌 경제 성장의 필수 동반자로만 자리매김했다. ‘정경유착’이란 말이 한물간 용어가 된 것만 같이, 오히려 정·재계가 가깝게 보이기 위해 애를 쓰는 듯한 사진 구도도 여러 번 노출됐다. 대기업 총수들이 2023년 12월 6일 부산 중구 깡통시장에서 윤 전 대통령과 함께 떡볶이를 시식하는 장면, 모두 기억할 것이다.
이재명 대통령은 대선 공약에서 별다른 재벌개혁을 언급하지 않았다. 어쩌면 당연했다. 아무도 관심을 두지 않는 주제이기 때문이다. 물론 이사의 충실의무 대상을 ‘회사 및 주주’로 확대하는 상법 개정안을 강력히 추진하긴 했지만, 그 배경도 재벌의 지배구조를 뜯어고치겠다는 의도보다는 주식시장의 개미들을 보호하려는 목적이 컸다.
삼성생명 일탈 회계에 대한 지난 호 기사를 쓰기 전 스스로 여러 번 검열을 했다. 이 내용은 과연 시의성이 있는가, 기사화할 만한 화제성·영향성 등 가치가 있는가. 이유는 모르겠지만 다른 기사를 쓸 때보다 여러 번 스스로 질문하고 주저하고 있었다. 저 깊은 무의식 속에, 중국 반도체의 맹추격을 받는 국내 대표기업 삼성의 발목을 내가 붙잡는 건 않을지에 대한 우려가 자리 잡았을 수도 있다. ‘삼성’은 내게도 쉽지 않은 벽이었다.
하지만 불변의 진실은 삼성의 지배구조가 기형적이란 것이고, 그 기형적 구조 속에서 누군가는 피해를 본다는 것이다. 이재용 회장이 고작 지분율 1.63%로 삼성전자를 지배할 수 있는 것도, 삼성물산과 삼성생명으로 이어지는 지배구조 때문인데, 그 지배구조를 만든 건 유배당 보험 계약자의 돈이었다. 그리고 삼성은 유배당 보험 계약자들에게 성과의 이익을 나눠주지 않고 있다. 또 이들의 회계는 그런 사실을 가리고 있다.
기사는 나갔다. 삼성은 여러 경로를 통해 연락이 왔다. 기사 내용에 대한 해명을 위해서였다. 사진이나 제목을 서로가 합의되는 선에서 조정하기도 했다. 이런 과정을 여러 차례 겪다 보면 일반적인 다른 기사를 쓸 때와는 다른 피로감이 깊이 쌓인다. 그런데도 불변의 진실, 즉 일탈 회계와 기형적 지배구조가 바뀌지 않는 한 누군가는 재벌개혁을 말해야 하고, 누군가는 그것을 취재해야 할 것이다. 내게 기회가 다시 와도 나는 또 주저하겠지만, 결국 같은 선택을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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